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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472

江 2 - 장석남 江2 - 고요함 장석남 오늘은 고요하군 바람 한점 없고 수면은 안개에 밀려가는 길처럼 순하군 순하디 순하군 아이라도 하나 낳아 기르는가? 기르면서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가르치는가? 진리란 것도 그래서 어디쯤에서는 부딪는 데 있어서 아프단 것도 가르치는가? 반쯤은 도로 삼켜지는, 반쯤의 노랫소리로만 들려주는가? 고요하고 고요하여 강 안의 철썩임 순하군 모든 것 손놓고 깊이 깊이 아이라도 다독여 재우는가 * tirol's thought 독한 걸 어디에 쓰겠는가. 소음 속에서 무엇을 듣겠는가. 순하고 고요한 것들이 귀하고 귀하다. 2004. 12. 10.
江 1 - 장석남 江 1 -흘러감 장석남 어느 깨달음이 저보다 더 어여쁜 자세가 될 것인고 무엇이 저렇듯 오래 젊어서 더더욱 찬란할 것인고 강을 건너는 것이 어디 나뭇잎들이나 새들뿐이던가 봄이나 안개들 뿐이던가 저 자세 저 --- 밑바닥에서 지금 무엇이 가라앉은 채 또한 강을 건너고 있는지 때로 강의 투명은 그것을 보여주려는 일 이 세상에 나온 가장 오랜 지혜를 보여주려는 일 가장 낮은 자가 가장 깊이 삶을 건너는 가장 가벼운 자가 가장 높이 이승을 건너는, 어느 깨달음이 저보다 더 어여쁜 자세가 될 것인고 /장석남,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창작과 비평사/ * tirol's thought 나는 지금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강을 건너는 자세는 어떠한지. 내 마음의 저 --- 밑바닥에서 지금 무엇이 가라앉은 채 .. 2004. 12. 10.
서울 사는 친구에게 - 안도현 서울 사는 친구에게 안도현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드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는구나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거든, 이리로 한 번 내려오게 기왕이면 호남선 통일호 열차를 타고 찐계란 몇 개 소금 찍어 먹으면서 주간지라도 뒤적거리며 오게 금주의 운세에다 마음을 기대보는 것도 괜찮겠고, 광주까지 가는 이를 만나거든 망월동 가는 길을 물어봐도 좋겠지 밤 깊어 도착했으면 하네, 이리역 광장에서 맥주부터 한 잔 하고 나는 자네가 취하도록 술을 사고 싶네 삶보다 앞서가는 논리도 같이 데리고 오게 꿈으로는 말고 현실로 와서 걸판지게 한 잔 먹세 어깨.. 2004. 12. 9.
나의 시의 발전사 - 김혜순 나의 시의 발전사 김혜순 줄 것이 없어 나는 자식에게 별명을 선물로 준다 __가시야, 실파리야, 거머리야 자식은 그런 가녀린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없다고 투덜거린다. 그 다음 나는 좀 더 예술적인 선물을 준다. __피아노를 울려라, 딩동댕. 풀피리를 불어라, 삘릴리. 작은북을 울려라 통통통 자식은 나는 당신의 악기가 아니라고 투덜거린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딱딱하고 교훈적인 별명을 내 자식에게 수여한다. __무솔리니! 흐루시초프! 마오쩌둥! 자식은 다시 그런 갖고 놀 수 없는 것은 곰팡내 나는 것은 싫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이제 꿇어 엎드려 싱싱한 자연을 상납한다. __바람아? 그럼 파도는? 그럼 바다, 하늘, 그럼 자유는 어떤지요? 화가 난 아이는 그 따위 먹을 수 없는 것은 싫다고 그런다. 나는 정말.. 2004. 12. 7.
서울의 예수 - 정호승 서울의 예수 정호승 1 예수가 낚시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 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가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랑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을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 2004. 12. 6.
소풍 - 나희덕 소풍 나희덕 얘들아, 소풍가자. 해 지는 들판으로 나가 넓은 바위에 상을 차리자꾸나. 붉은 노을에 밥 말아 먹고 빈 밥그릇에 별도 달도 놀러오게 하자. 살면서 잊지 못할 몇 개의 밥상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그런 밥상을 너희에게 차려줄 때가 되었나보다. 오갈 데 없이 서러운 마음은 정육점에 들러 고기 한 근을 사고 그걸 싸서 입에 넣어줄 채소도 뜯어왔단다. 한 잎 한 잎 뜯을 때마다 비명처럼 흰 진액이 배어 나왔지. 그리고 이 포도주가 왜 이리 붉은지 아니? 그건 대지가 흘린 땀으로 바닷물이 짠 것처럼 엄마가 흘린 피를 한 방울 씩 모은 거란다. 그러니 얘들아, 꼭꼭 씹어 삼켜라. 그게 엄마의 안창살이라는 걸 몰라도 좋으니, 오늘은 하루살이떼처럼 잉잉거리며 먹자.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2004.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