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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5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 정호승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정호승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 놓은 강아지도 한 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강아지의 오줌이 스며들 때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이 개새끼라고 소리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개나 사람이나 풀잎이나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산에 개를 데려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멱살잡이까지 했던 내가 왜 강아지를 향해 구두를 내던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데 나는 한 마리 강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2022. 8. 10.
꽃 지는 저녁 - 정호승 꽃 지는 저녁 정호승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꽃지는 저녁에는 배도 고파라 /정호승,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2008.9. 열림원. * tirol's thought 오랫만에 올려보는 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라는 말은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이광재 전 의원이 쓴 편지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지난 토요일부터 내 마음도 황망하다. 솔직히 정치적으로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이 인간적인 매력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보여준 소탈한 모습들,.. 2009. 5. 26.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정호승,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열림원, 1998년 06월/ * tirol's thought 그늘이 있고 눈물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 2006. 9. 26.
겨울 강에서 - 정호승 겨울 강에서 정호승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겨울 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정호승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창비, 1979/ * tirol's thought 출근 길에 보니 강남교보문고 벽에 걸린 글판이 바뀌었다. 어디서 나온 글인가 찾아보니 정호승의 시다. 그런데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맞나? 흔들리기 싫다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면 갈대가 아니지 않을까? [2005.12.1-2006.3.7] 2006. 1. 5.
밥 먹는 법 - 정호승 밥 먹는 법 정호승 밥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무엇보다도 전시된 밥은 먹지 말 것 먹더라도 혼자 먹을 것 아니면 차라리 굶을 것 굶어서 가벼워질 것 때때로 바람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창비시선 161,정호승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 tirol's thought 똑같은 시를 신문에서 읽을 때와 시집에서 읽을 때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이 시는 신문에서 먼저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 시집을 샀는데 시집에서 읽는 시는 맛이 나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으며 습관적으로 펴는 신문. 흥미있는 기사가 없어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어내려가는 글자들.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밥상 앞에 무릎도 꿇고,.. 2001.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