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5 저 물결 하나 - 나희덕 저 물결 하나 나희덕 한강 철교를 건너는 동안잔물결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얼마 안 되는 보증금을 빼서 서울을 떠난 후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한강,어제의 내가 그 강물에 뒤척이고 있었다한 뼘쯤 솟았다 내려앉는 물결들,서울에 사는 동안 내게 지분이 있었다면저 물결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물결, 일으켜물새 같은 아이 둘을 업어 길렀다사랑도 물결, 처럼사소하게 일었다 스러지곤 했다더는 걸을 수 없는 무릎을 일으켜 세운 것도저 낮은 물결, 위에서였다숱한 목숨들이 일렁이며 흘러가는 이 도시에서뒤척이며, 뒤척이며, 그러나같은 자리로 내려앉는 법이 없는저 물결, 위에 쌓았다 허문 날들이 있었다거대한 점묘화 같은 서울물결, 하나가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건넨다저 물결을 일으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tirol's thou.. 2018. 12. 20.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 나희덕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편지 2 나희덕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져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만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 source: http://goo.gl/4NxQt * tirol's thought 세상의 안과 밖, 잊혀지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결국은 둘 다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쉽게 해 저물지 않는.. 2011. 7. 28. 고통에게1 - 나희덕 고통에게 1 나희덕 어느 굽이 몇 번은 만난 듯도 하다 네가 마음에 지핀 듯 울부짖으며 구르는 밤도 있지만 밝은 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너는 정작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너는 무심한 표정으로 와서 쐐기풀을 한 짐 내려놓고 사라진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 벌의 수의를 짜는 일이 라고, 그때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마술에 걸린 듯 수의를 위해 삶을 짜 깁는다 손 끝에 맺힌 핏방울이 말라 가는 것을 보면서 네 속의 폭풍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봄볕이 아른거리는 뜰에 쪼그려 앉아 너를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나는 너를 기다리는 것인가 오늘은 비명 없이도 너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말해도 좋은 것인가 제 죽음에 기대어 피어날 꽃처럼, 봄뜰에서. * tirol.. 2008. 11. 26. 시월 - 나희덕 시월 나희덕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꺽어 물 위로 무심히 흘려 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 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새삼 골짜기에 싸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벗하여 살 이름 머루나 다래, 물든 잎사귀와 물, 山門을 열고 제 몸을 여는 바위, 도토리, 청설모, 쑥부쟁이뿐이어서 당신 이름뿐이어서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2008. 10. 24. 열대야 - 나희덕 열대야 나희덕 얼마나 더운지 그는 속옷마저 벗어던졌다 엎드려 자고 있는 그의 엉덩이, 두 개의 무덤이 하나의 잠을 덮고 있다 잠은 죽음의 연습, 때로는 잠꼬대가 두렵고 내쉬는 한숨의 깊이 쓸쓸하지만 그가 다녀온 세상에 내가 갈 수 없다는 것만큼 두렵고 쓸쓸한 일이 있을까 그의 벗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벌거벗은 육체가 아름다운 건 주머니가 없어서일 것이다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그 강을 오늘도 건넜다가 돌아올 것이다, 그는 밤은 열대처럼 환하다 * tirol's thought 그가 다녀온 세상에 내가 갈 수 없다는 것만큼 두렵고 쓸쓸한 일 은 있을 것 같다.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그 강을 오늘도 건넜다가 돌아오는 일. 열대야 때문에 나도 요즘 가끔씩 속옷마저 벗어던지고 잠들곤 한다. 게다가 가끔 어떤.. 2006. 8. 1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