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478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 허수경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허수경 저녁에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떨어진 물새 찬 물새훅,밀려오는 바람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꽃다발을 보내기에도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꿈벅거리며바람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들며 중얼거리네 당신,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였어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그 앞에 서서 조용히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던 꽃을 집어드는 양.. 2024. 10. 23.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최승자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매독 같은 가을.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tirol's thought ‘개 같은 가을‘, ‘매독 같은 가을‘은 어떤 가을일까일단 분위기 있고, 여유있는 가을은 아닌게 분명하다.게다가 그냥 오는 것도 아니고 ’쳐들어‘ 온다.싸움을 걸듯, .. 2024. 10. 17. 살고보자 살았나 살았다 이렇게까지 살아서 뭐하나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나 그래도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백배 낫지 러프든 벙커든 오비 말뚝 옆 경사든 살았으면 다음 샷 잘 치면 되지 살았다고 다음 샷 잘 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쳐보는 게 남는 장사 아닌가 탑볼이든 뒤땅이든 앞으로 보내는 게 어딘가 이 정도면 낫 배드 화낸다고 정타없고 분낸다고 장타없다 쓰리온에 투퍼팅 컨시드 더블로 막았으니 이만하면 훌륭하지 살았나 살고보자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아서 운좋으면 파도 보고 버디도 보겠지 일단 살고 보자 2024. 10. 10. 클럽하우스에서 새벽 여섯시 십오분모자를 고쳐쓰고허리띠를 조이고신발끈을 묶는다비장한 표정으로거울 앞에 일렬로 서서보호크림을 바르는 사람들빼놓은 건 없나화장실은 다녀왔나서로의 컨디션을 물어보머결의를 다진다맨 정신으로는 힘들었는지옆자리에선 얼핏 술 냄새도 난다골프를 모르는 외계인들이 보면지구를 구하러 나서는최후의 용사들인 줄 알겠다18번의 전투를 마치고무사히 귀환할 수 있길싸움에 지더라도 나라 잃은 백성처럼슬퍼하거나 폭음하지 않길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짝대기로 하는 공놀이라는 걸잊지않길 다짐하는클럽하우스에서의 기도 2024. 10. 10. 생활과 예보 - 박준 생활과 예보 박준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 tirol's thought 시 속의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는 흰색 란닝구를 입고 계실 것 같다.아버지는 왜 진종일 아무 것도 안하고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을까.어디가 아픈가? 마음이 아픈가?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가? 아무 것도 할 게 없는가?아니면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오늘만 모처럼 쉬고 있는 건가? '비 온다니 꽃지겠다'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은 왜 이 말이었을까.말이 하기 싫었던 건가? 말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건가? 비가 온다니 걱정이 된다는 건가? 좋으면서도 싫다는 건가? 일기예보를 듣다가 뜬금없이 어떤 일이 생각나신 건가? 말과 .. 2024. 7. 21. 성묘 성묘 엄마 가신 지 십년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나가 엄마 무덤가에 한참 앉아 있다 왔다 십년 전 엄마 아프실 때도 그랬다 둘이 이른 저녁을 해 먹고 엄마는 티브이를 보다가 졸고 나는 엄마 옆에 그냥 앉아 있다 왔다 오늘도 그냥 그렇게 앉아 티브이 대신 산소 앞 풍경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왔다 기댈 곳 없는 등이 문득 아프기도 했다 2024. 6. 10. 이전 1 2 3 4 ··· 8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