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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7

슬라이스 슬라이스 꿀을 발라놨나 지남철을 붙여놨나 천관녀의 집을 찾아가는 김유신의 말도 아니고 자알 나가는 것 같다가 결국 오른쪽 그것도 오비 힘을 주고 쳐봐도 힘을 빼고 쳐봐도 왼발 위치를 옮겨봐도 그립을 바꿔 잡아봐도 소용없다 젠장 아예 방향을 좀 바꿔봐 그렇다고 말도 안되게 왼쪽을 볼 수는 없잖아 딱 맞혀서 똑 바르게 보내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자 그래도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에에델바아이스 딱 어어어 이번엔 왼쪽 흰 말뚝 너머로 날아간 공 이번 홀은 왼쪽이 오비 오른쪽이 해저드라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만 더 쳐보면 안될까 2023. 7. 25.
구두 - 조성규 구두 조성규 구두를 닦는다 침 뱉어가며 검댕 묻혀가며 닳아빠진 세월의 뒷축이여 끈덕지게 달라붙는 자잘한 슬픔의 먼지들이여 얼굴을 보여다오 상처투성이 청춘의 구두코여 주름진 외로움의 발등이여 해어진 사랑 북북찢어 추억의 손가락에 둘둘감고 땀 흘려가며 큰숨 몰아쉬어가며 구두를 닦는다 닦아도 빛나지 않는 구두여 보이지 않는 얼굴이여 손 끝에 배어 물드는 새까만 미련이여 닦이지 않는 눈물이여 1998. 2. 25.
옛사랑 - 조성규 옛사랑 조성규 비같은 눈이 내린다 아, 눈이구나 미소지으며 지난 여름 피었다 진 장미꽃들을 떠올릴 여유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마른 땅위에 처박히는 얼다만 눈물같이 서러운 눈 습관처럼 건네다 보던 맞은편 건물 옥상 화단은 시든꽃 한송이 없이 갈아엎어져 굳은 표정으로 시린 눈을 맞고 있는데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고 시큼하게 번져오는 어지럼증에 무심코 짚은 유리창이 차다 1995. 1. 25.
어머니 - 조성규 어머니 조성규 창 밖 아직 어두운데 허리에 손 짚으며 힘들게 일어서는 당신 지난 밤 기침 소리같은 그릇 부딪치는 소리 들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물소리 늦은 저녁 한쪽 무릎 세우고 앉아 오래 묵은 김치와 국 한사발 밥말아 긴 한숨처럼 넘기시는 당신 모습 보이네 밥물처럼 차오르는 슬픔 닦으며 어머니 오늘도 아침을 지으시네 1994. 4. 15.
소래포구에서 - 조성규 소래포구에서 조성규 무엇하러 왔나 이곳에 오래전 살았던 옛집 문밖을 서성이듯이 흘낏 넘겨다본 바다엔, 때 안간 빨래들처럼 퍼덕거리는 갈매기들 그릇가로 밀쳐낸 선지 덩어리같은 갯벌뿐 시장이 보이는 이층 식당에서 정작 시켜논 회는 못먹고 마알간 술에 매운탕의 생선뼈만 뒤적거리는 마음 자꾸만 허리가 아프다. 1994. 3. 25.
흑백사진 - 티롤 흑백 사진 tirol 자 여길 보세요 웃어요 그래 옳치 싸구려 사진기를 든 젊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지저분한 흙담아래 까만 고무신 바지조차 돌려입은 저 아이의 통통한 미소는 키작은 채송화 향기 어스름한 저녁 하늘 훈훈히 흐르는 굴뚝 연기와 노오랗게 묻어나는 감자타는 내음 어느새 창밖은 암실처럼 어두워지고 눈물처럼 밀려드는 먼 산동네의 불빛 꺼칠해진 턱을 만지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빛바랜 세월의 그림자 나 그리고 아버지의 뒷모습 1992.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