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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8

조그만 사랑노래 -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몇 송이의 눈. * tirol's thought 날이 많이 춥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지난 일요일 새벽엔 서울에 첫 눈이 왔다고 한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추위는 몸을 움츠리게 만들고 지난 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주 오래 전,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의 기억들. 장면들이 명료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느낌은 오히려 생생하다. 외롭고 쓸쓸했던 날, 한 모금의 따뜻한 .. 2009. 11. 16.
시월 - 황동규 十 月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江물을 夕陽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旅程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木琴소리 木琴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 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四面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丹靑 밖으로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2006. 11. 21.
달밤 - 황동규 달밤 황동규 누가 와서 나를 부른다면 내 보여 주리라 저 얼은 들판 위에 내리는 달빛을 얼은 들판을 걸어가는 한 그림자를 지금까지 내 생각해 온 것은 모두 무엇인가 친구 몇몇 친구 몇몇 그들에게는 이제 내 것 가운데 그 중 외로움이 아닌 길을 보여 주게 되리 오랫동안 네 여며온 고의춤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두 팔 들고 얼음을 밟으며 갑자기 구름 개인 들판을 걸어 갈 때 헐벗은 옷 가득히 받는 달빛 달빛. /황동규, 삼남에 내리는 눈, 민음사, 1975/ * tirol's thought 블로그에 시를 올릴 때 주로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시들을 이용하게 되는데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 대조를 해보면 가끔 틀린 곳이 발견된곤 한다. 철자법이 틀린 곳도 있고, 단어를 빼먹기도 한다. 이 시도 그랬다. 인터넷에서 찾.. 2006. 8. 29.
김현의 본명은? - 황동규 김현의 본명은? 황동규 너는 세상 버리고 나서 더욱 까다로워졌구나. 내일 네 삼주기(週忌)를 맞기 위해 오늘밤 가장 깊이 숨겨두었던 술병을 따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을 CD로 불러놓고 한잔 들게 하는구나. 이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삼 년 더 낡았다. 그곳엔 지금 새 망초 구름성(城)이 서고 물결나비들이 날겠지. 네가 웃고 있구나 소리없이. 참 거기도「서편제」있니? 광남아! /황동규 시집, 미시령 큰바람, 문학과 지성사, 1993년/ * tirol's thought 이 시를 읽다보니 김현과 황동규가 자주 다녔었다는 '반포치킨'에서 읽은 '대설날'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아내가 살고 있던 반포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연애시절 들러 본 그 치킨집 벽에 그 시가 걸려있었다.(치킨 맛은 별로였다) 그때도 난 그들의 우정이.. 2005. 6. 10.
즐거운 편지 - 황동규 즐거운 편지 황동규 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Ⅱ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현대문학1958/ * tirol's thought 가끔 골짜기에 거세게 퍼붓는 눈을 보면 정녕 그치지 않을 것 처럼 생각될 때도 있지만.. 2005. 3. 4.
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 - 황동규 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 황동규 1 내 그처럼 아껴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던 어린 나무들이 얼어 쓰러졌을 때 나는 그들을 뽑으러 나갔노라. 그날 하늘에선 갑자기 눈이 그쳐 머리 위론 이상히 희고 환한 구름들이 달려가고, 갑자기 오는 망설임, 허나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은 목, 오 들을 이 없는 고백. 나는 갔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그 어린 나무들의 자리로. 그런데 어느날 누가 내 젊음에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노라. 나즉히 나즉히 아직 취하지 않은 술집에서 불러내는 소리를. 날 부르는 자여, 어지러운 꿈마다 희부연한 빛 속에서 만나는 자여, 나와 씨름할 때가 되었는가. 네 나를 꼭 이겨야겠거든 신호를 하여다오. 눈물 담긴 얼굴을 보여다오. 내 조용히 쓰러져 주마. 2 갑자기 많은 눈이 내려 잘 걸.. 2005.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