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

소풍 - 나희덕

by tirol 2004. 12. 3.
소풍

나희덕


얘들아, 소풍가자.
해 지는 들판으로 나가
넓은 바위에 상을 차리자꾸나.
붉은 노을에 밥 말아 먹고
빈 밥그릇에 별도 달도 놀러오게 하자.
살면서 잊지 못할 몇 개의 밥상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그런 밥상을
너희에게 차려줄 때가 되었나보다.
오갈 데 없이 서러운 마음은
정육점에 들러 고기 한 근을 사고
그걸 싸서 입에 넣어줄 채소도 뜯어왔단다.
한 잎 한 잎 뜯을 때마다
비명처럼 흰 진액이 배어 나왔지.
그리고 이 포도주가 왜 이리 붉은지 아니?
그건 대지가 흘린 땀으로 바닷물이 짠 것처럼
엄마가 흘린 피를 한 방울 씩 모은 거란다.
그러니 얘들아, 꼭꼭 씹어 삼켜라.
그게 엄마의 안창살이라는 걸 몰라도 좋으니,
오늘은 하루살이떼처럼 잉잉거리며 먹자.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너도 네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그때까지, 그때까지는
저 노을빛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이 바위에 둘러앉아 먹는 밥을
잊지 말아라, 그 기억만이 네 허기를 달래줄 것이기에

Tracked from http://blog.naver.com/bluecheek/100006878613

* tirol's thought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너도 네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이젠 나도 어렴풋이
내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나도 내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겠지.

'시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시의 발전사 - 김혜순  (0) 2004.12.07
서울의 예수 - 정호승  (1) 2004.12.06
우체통 - 이진명  (0) 2004.12.02
담장이 넝쿨 - 권대웅  (1) 2004.12.01
사무원 - 김기택  (2) 200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