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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네가 쉴 곳은 내 안에 없다 - 김기택 마음아, 네가 쉴 곳은 내 안에 없다 김기택 누웠다 일어났다 먹다 신문을 보다 티브이를 보다 자다 하는 일밖에 할 일이 없을 때 몸은 하나의 정교한 물시계 같다 미세한 방광의 눈금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몸이 버린 물들이 고이는 것이 느껴진다 눈금이 모두 채워지면 방광에 종이 울린다 그때는 아무리 게으른 몸뚱이라도 정확하게 몸을 일으켜 오줌을 누어야 한다 물시계가 죽지 않도록 물을 잘 쏟아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꼬박꼬박 먹고 마시는데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몸무게는 그대로다 그 동안 먹은 밥 마신 물 모두 어디로 갔나 대부분 배설물 분비물로 빠져나갔겠지만 머리카락이 되어 깍이고 손톱 발톱이 되어 깍이고 때가 되어 밀려나가고 기운을 써서 소모시켜 버렸겠지만 더러는 말이 되어 입에서 새어나가지 않았을까 .. 2004. 12. 13.
江 2 - 장석남 江2 - 고요함 장석남 오늘은 고요하군 바람 한점 없고 수면은 안개에 밀려가는 길처럼 순하군 순하디 순하군 아이라도 하나 낳아 기르는가? 기르면서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가르치는가? 진리란 것도 그래서 어디쯤에서는 부딪는 데 있어서 아프단 것도 가르치는가? 반쯤은 도로 삼켜지는, 반쯤의 노랫소리로만 들려주는가? 고요하고 고요하여 강 안의 철썩임 순하군 모든 것 손놓고 깊이 깊이 아이라도 다독여 재우는가 * tirol's thought 독한 걸 어디에 쓰겠는가. 소음 속에서 무엇을 듣겠는가. 순하고 고요한 것들이 귀하고 귀하다. 2004. 12. 10.
江 1 - 장석남 江 1 -흘러감 장석남 어느 깨달음이 저보다 더 어여쁜 자세가 될 것인고 무엇이 저렇듯 오래 젊어서 더더욱 찬란할 것인고 강을 건너는 것이 어디 나뭇잎들이나 새들뿐이던가 봄이나 안개들 뿐이던가 저 자세 저 --- 밑바닥에서 지금 무엇이 가라앉은 채 또한 강을 건너고 있는지 때로 강의 투명은 그것을 보여주려는 일 이 세상에 나온 가장 오랜 지혜를 보여주려는 일 가장 낮은 자가 가장 깊이 삶을 건너는 가장 가벼운 자가 가장 높이 이승을 건너는, 어느 깨달음이 저보다 더 어여쁜 자세가 될 것인고 /장석남,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창작과 비평사/ * tirol's thought 나는 지금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강을 건너는 자세는 어떠한지. 내 마음의 저 --- 밑바닥에서 지금 무엇이 가라앉은 채 .. 2004. 12. 10.
서울 사는 친구에게 - 안도현 서울 사는 친구에게 안도현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드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는구나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거든, 이리로 한 번 내려오게 기왕이면 호남선 통일호 열차를 타고 찐계란 몇 개 소금 찍어 먹으면서 주간지라도 뒤적거리며 오게 금주의 운세에다 마음을 기대보는 것도 괜찮겠고, 광주까지 가는 이를 만나거든 망월동 가는 길을 물어봐도 좋겠지 밤 깊어 도착했으면 하네, 이리역 광장에서 맥주부터 한 잔 하고 나는 자네가 취하도록 술을 사고 싶네 삶보다 앞서가는 논리도 같이 데리고 오게 꿈으로는 말고 현실로 와서 걸판지게 한 잔 먹세 어깨.. 2004. 12. 9.
정오차의 '바윗돌' 정오차의 '바윗돌'이란 노래에 이런 사연이 있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사연을 알고 들으니 가사가 남다르게 들린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세요) 2004. 12. 8.
나의 시의 발전사 - 김혜순 나의 시의 발전사 김혜순 줄 것이 없어 나는 자식에게 별명을 선물로 준다 __가시야, 실파리야, 거머리야 자식은 그런 가녀린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없다고 투덜거린다. 그 다음 나는 좀 더 예술적인 선물을 준다. __피아노를 울려라, 딩동댕. 풀피리를 불어라, 삘릴리. 작은북을 울려라 통통통 자식은 나는 당신의 악기가 아니라고 투덜거린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딱딱하고 교훈적인 별명을 내 자식에게 수여한다. __무솔리니! 흐루시초프! 마오쩌둥! 자식은 다시 그런 갖고 놀 수 없는 것은 곰팡내 나는 것은 싫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이제 꿇어 엎드려 싱싱한 자연을 상납한다. __바람아? 그럼 파도는? 그럼 바다, 하늘, 그럼 자유는 어떤지요? 화가 난 아이는 그 따위 먹을 수 없는 것은 싫다고 그런다. 나는 정말.. 2004.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