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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이 넝쿨 - 권대웅 담장이 넝쿨 권대웅 김과장이 담벼락에 붙어있다 이부장도 담벼락에 붙어있다 서상무도 권이사도 박대리도 한주임도 모두 담벼락에 붙어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밀리지 않으려고 납작 엎드려 사력을 다해 견뎌내는 저 손 때로 바람채찍이 손등을 때려도 무릎팍 가슴팍 깨져도 맨손으로 암벽을 타듯이 엉키고 밀어내고 파고들며 올라가는 저 생존력 모두가 그렇게 붙어 있는 것이다 이 건물 저 건물 이 빌딩 저 빌딩 수많은 담벼락에 빽빽하게 붙어 눈물나게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Tracked from http://blog.naver.com/gulsame/40008412474 * tirol's thought 강과장도 담벼락에 붙어있다 원부장도 담벼락에 붙어있다 정차장도 김계장도 조대리도 이대리도 모두 담벼락에 붙어있다 .. 2004. 12. 1.
사무원 - 김기택 사무원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장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손익관리대장경(損益管理臺帳經)과 자금수지심경(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 2004. 11. 30.
눈 - 김명인 눈 김명인 꽃이 핀다, 일만 세계의 저편에 내 일만 번 눈맞춰둔 별이 있음을, 그 별을 스쳐 여기에 닿는 인연의 무한한 짧음이여! 죽음이 여러 죽음을 거쳐 눈 날리듯 문득 옷깃으로 스치는 목숨의 또 다른 변신, 그대는 어느 별자리에서 이리로 사뿐히 옮겨오시는가 손을 펴면 한아름 가득 눈부시게 손짓해 다가오는 눈, 눈, 눈 Tracked from http://blog.naver.com/skyman63/120007880236 * tirol's thought 언제부턴가 눈이 오는 것을 썩 즐거워하지 않게 되었다. 눈 때문에 차가 막히는 것도 짜증스럽고, 대기의 온갖 오염물질을 품고 내리는 그것들을 우산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맞는 것도 찜찜하다. (작년 말께부터 앞머리가 심하게 빠지기 시작했는데 이거 정말 신경쓰.. 2004. 11. 24.
가구(家具)의 힘 - 박형준 가구(家具)의 힘 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 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나오는 오래 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 2004. 11. 23.
예수는 누구인가? 존 도미니크 크로산 교수.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연구. 이러한 연구가 가지는 장점과 미덕. 그러나 그가 신의 아들이라는 점을 믿지 못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예수 말고도 역사 속에는 수많은 혁명가와 변혁 운동가들이 있지 않은가. 예수가 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2004. 11. 23.
물고기에게 배우다 - 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맹문재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Tracked from http://blog.empas.com/engame64/2113128 * tirol's thought 시인은 물고기에게 배우고 나는 시에게 배운다. '약한 .. 2004.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