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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에서 - 조성규 소래포구에서 조성규 무엇하러 왔나 이곳에 오래전 살았던 옛집 문밖을 서성이듯이 흘낏 넘겨다본 바다엔, 때 안간 빨래들처럼 퍼덕거리는 갈매기들 그릇가로 밀쳐낸 선지 덩어리같은 갯벌뿐 시장이 보이는 이층 식당에서 정작 시켜논 회는 못먹고 마알간 술에 매운탕의 생선뼈만 뒤적거리는 마음 자꾸만 허리가 아프다. 1994. 3. 25.
흑백사진 - 티롤 흑백 사진 tirol 자 여길 보세요 웃어요 그래 옳치 싸구려 사진기를 든 젊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지저분한 흙담아래 까만 고무신 바지조차 돌려입은 저 아이의 통통한 미소는 키작은 채송화 향기 어스름한 저녁 하늘 훈훈히 흐르는 굴뚝 연기와 노오랗게 묻어나는 감자타는 내음 어느새 창밖은 암실처럼 어두워지고 눈물처럼 밀려드는 먼 산동네의 불빛 꺼칠해진 턱을 만지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빛바랜 세월의 그림자 나 그리고 아버지의 뒷모습 1992. 6. 25.
연가 연가 tirol 언제나 그대와 나 사이의 강물가를 거닐며 혼자울었습니다 손을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있는 힘껏 목청을 울려보아도 그대는 그저 저편에서 눈부신 웃음만 짓고 계셨죠 나를 보시기나 한건지 하여튼 난 그댈위해 노랠부르고 그대를 위해 성을 쌓았읍니다 행복했읍니다 가끔 행여 그대가 나를 모른체 하시는 것 같음에 서러워 그대 몰래 그늘가 벽에 머리를 찧으며 눈물처럼 흐르는 피를 우두커니 지켜보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그대는 늘 떠나시고 그대가 막 떠나시며 남기는 연분홍 빛 눈웃음에 가슴졸이며 내 영혼 서서히 이울어져감을 봅니다 그대없는 내가 무슨 소용 있을까요 그대는 내 시작이며 끝입니다 사랑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오늘도 난 강가에 나와 앉아 노랠부르고 성을 쌓습니다 늘 떠나시며.. 1991.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