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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노래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2001. 10. 17.
빈집 - 기형도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문학과 지성'시인선80.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77p. * tirol's thought 94.05.20. 13:25 청주행 승차권(승객용). 좌석번호 1. /1990.5,21.奎/015-241-0797.박상준/특별써비스권, 하트프라자 노래방/42p. '물 속의 사막'이란 시 제목에 동그라미/17p. '조치원'이라는 시 다섯번째 줄 '젖은 담배 필터 같은 기침 몇 개를'이란 부분에 밑줄./빈 집에.. 2001. 9. 16.
편지 1 - 이성복 편지 1 이성복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 이성복 시집'그 여름의 끝'/ * tirol's thought 이문세 노래 중에 '옛사랑'이란 노래가 있지. 그 노래 가사 중에...'사~랑이란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구절이 있지. 내게 지금 사랑은? 지겨우냐구? 내게 지금...사랑은 너무 멀리 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만이 가까이 있을 뿐. 사랑이 나를 지겨워하기 시작한 걸까?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그런 사랑은 도데체 어.. 2001. 9. 16.
서른하나 - 신동호 서른하나 신동호 고맙다 세월이여 가로수 위로 노을이 내려앉아 귀가의 저녁에 너의 얼굴을 만나면 배냇저고리, 색이 바랜 무명은 고통과 더불어 어머니의 장롱 어딘가에 묻혀있고 장롱, 다섯번의 이사와 궁색한 가계를 지켜본 귀퉁이의 자개조각 붙어 있는 그만큼 네가 고맙다 스물이던 시절부터 가능하던 나의 아이여 저물 무렵의 골목은 길어져가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하나 둘 스물하나 스물둘 세월마다 켜켜이 쌓인 그리운 이여, 노을이 지면 그림자 사라지고 길은 짧아질까 그럴수록 천천히 걸어볼 일이었을까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준 나날이여 한때나마 원망도 있었다 서른의 구비에서 모든 것은 하나의 결과로 취급되었으므로 가정과 안정을 추구하는 청춘의 꾀죄죄함이여 생각해보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이미 나올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2001. 9. 16.
가정 - 박목월 家庭 박목월 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詩人의 家庭에는 알 電燈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地上 연민한 삶의 길이어. 내 신발은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地上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한국현대시문학대계 18, 박목월 시집. 지식산업사/ *tirol's thought 중학교 다닐 때 나는 뭐가.. 2001. 9. 16.
이제 가야만 한다 - 최승자 이제 가야만 한다 최승자 때로 낭만주의적 지진아의 고백은 눈물겹기도 하지만, 이제 가야만 한다 몹쓸 고통은 버려야만 한다. 한때 한없는 고통의 가속도, 가속도의 취기에 실려 나 폭풍처럼 세상 끝을 헤매었지만 그러나 고통이라는 말을 이제 결코 발음하고 싶지 않다. 파악할 수 없는 이 세계 위에서 나는 너무 오래 뒤뚱거리고만 있었다. 목구멍과 숨을 위해서는 동사만으로 충분하고, 내 몸보다 그림자가 먼저 허덕일지라도 오냐 온몸 온정신으로 이 세상을 관통해보자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을 수 없을 때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는 곳에서 혹 내가 피어나리라.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78, 최승자 시집 '기억의 집'/ * tirol's thought 그래 모두 맞다. "몹쓸 고통은 버려야 하고" 나역시 "고통이라는.. 2001.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