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472

신기하다, 신기해, 햇빛 찬연한 밤마다 - 이성복 신기하다, 신기해, 햇빛 찬연한 밤마다 이성복 어째서 산은 삼각형인가 어째서 물은 삼각형으로 흐르지 않는가 어째서 여자 젖가슴은 두 개뿐이고 어미개의 젖가슴은 여덟개인가 언제부터 젖가슴은 무덤을 닮았는가 어떻게 한 나무의 꽃들은 같은 색, 같은 무늬를 가졌는가 어째서 달팽이는 딱딱한 껍질 속에서 소리지르지 않고 귤껍질은 주황색으로 빛나며 풀이 죽는가 귤껍질의 슬픔은 어디서 오는가 어째서 병신들은 바로 걷지 못하고 전봇대는 완강히 버티고 서 있는가 왜 해가 떠도 밤인가 매일 밤 물오리는 어디에서 자는가 무슨 수를 써서 조개는 멋진 껍질을 만드는가 왜 청년들은 月經을 하지 않는가 어째서 동네 깡패들은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가 왜 장님은 앞을 못 보고 소방서에서는 불이 나지 않는가 불에 타 죽어가는 새들은 .. 2004. 10. 15.
조랑말 - 신경림 조랑말 - 몽골에서 신경림 황량한 초원을 조랑말을 타고 건너리 허리에는 말린 말고기 한 줌 차고. 톈산을 넘어 눈보라 속을 내달렸을 날렵한 몽골 기병처럼. 유목민 게일에 들어 몇 밤 지새다 보면 너무 지쳐 돌아올 길 아예 잃어버릴는지도 모르지. 어떠랴, 누우면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내 온몸을 따뜻이 감싸주는 수많은 별이 있는데. 이방인의 문전을 조랑말을 앞세우고 기웃대다 보면 어쩌면 이 세상이 다시 그리워질까. 도시의 매연과 소음까지 어른어른 꿈결 속에 보면서, 내 못나고 천박한 짓이 전생의 일처럼 아득해지면서. 어깨에는 물병 하나 삐딱하게 메고 바람 부는 초원을 조랑말에 업혀 건너리. * tirol's thought 간밤에 비가 내린 탓인지 하늘이 맑다. 몽골 사람들은 눈이 아주 좋다고 한다. 그곳은 끝.. 2004. 10. 12.
부패의 힘 - 나희덕 부패의 힘 나희덕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 tirol's thought "인생은 썩은 막걸리야" 오늘 읽은 백남준의 인터뷰 생각이 난다. 72세의 노 예술가는 온갖 병을 친구처럼 거느리고 제대로 썩어간다. 그의 예술세계를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인터뷰는 멋졌다. 그저껜가? 물감을 칠한 피아노를 밀어버리는 '존 케이지에게 바침’이라.. 2004. 10. 8.
시인 목록 04/10/20 이정록 04/10/20 이재무 04/10/20 이윤학 04/10/19 황인숙 04/10/19 김종현 04/10/19 고은 04/10/18 진은영 04/10/13 신경림 04/10/07 나희덕 04/10/07 안도현 04/10/05 허수경 04/10/05 김광규 04/10/04 기형도 04/10/01 강연호 04/10/01 김기택 04/10/01 장석남 04/09/24 문태준 04/09/24 이성복 틈 나는대로 Keyword로 시인들의 약력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Empas 인물정보를 기초로 인터넷에 있는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서 만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시인이 있으면 한번 클릭해보세요. 2004. 10. 7.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 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 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 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 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 2004. 10. 6.
나의 저녁 - 허수경 나의 저녁 허수경 스며든다, 당신, 이 저녁 창에 앉아 길을 보는 나에게, 먼 햇살, 가까운 햇살, 당신의 온 생애를 다하여, 지금, 나에게 스며든다, 그리움과의 거친 전쟁을 멈추고 스며드는 당신에게 나 또한, 스며든다. 스며드는가, 다 저녁 때, 나의 생애가 당신에게 스며드는가, 어느 절명의 그리움, 그리움 속에 나, 순하게 깃들어, 어느 스러지는 저녁에 태어나는 아가들, 그 착한 울음 가득하다, 내 저녁. * tirol's thought 어느 저녁 낡은 버스 유리창에 어깰 기대고 물끄러미 해지는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저녁은 사람들이 순해지는 시간, 스며들기에 좋은 시간이다. 울음 착한 아가들 태어나는 스러지는 저녁, 나는 어디에 깃들것인가. 2004.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