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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100 - 김영승 반성·100 김영승 연탄 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 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 tirol's thought 아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고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면 어떤 그림을 그릴까?연탄, 리어카, 얼굴에 껌정칠을 한 아이들, 연탄 장수 아저씨...아들은 연탄집게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연탄을 어떻게 쌓아두는지도 모를 것이다.그래도 '니들은 두 장씩 날러'라는 말 속에 담겨있는 아저씨의 마음은 알지 않을까?아들이 연탄 장수 아저씨네 .. 2018. 12. 27.
저 물결 하나 - 나희덕 저 물결 하나 나희덕 한강 철교를 건너는 동안잔물결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얼마 안 되는 보증금을 빼서 서울을 떠난 후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한강,어제의 내가 그 강물에 뒤척이고 있었다한 뼘쯤 솟았다 내려앉는 물결들,서울에 사는 동안 내게 지분이 있었다면저 물결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물결, 일으켜물새 같은 아이 둘을 업어 길렀다사랑도 물결, 처럼사소하게 일었다 스러지곤 했다더는 걸을 수 없는 무릎을 일으켜 세운 것도저 낮은 물결, 위에서였다숱한 목숨들이 일렁이며 흘러가는 이 도시에서뒤척이며, 뒤척이며, 그러나같은 자리로 내려앉는 법이 없는저 물결, 위에 쌓았다 허문 날들이 있었다거대한 점묘화 같은 서울물결, 하나가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건넨다저 물결을 일으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tirol's thou.. 2018. 12. 20.
새벽별을 보며 - 김사인 새벽별을 보며 김사인 서울에서 보는 별은 흐리기만 합니다 술에 취해 들어와 그래도 흩어지는 정신 수습해 변변찮은 일감이나마 잡고 밤을 샙니다 눈은 때꾼하지만 머리는 맑아져 창 밖으로 나서면 새벽별 하나 저도 한 잠 못 붙인 피로한 눈으로 나를 건너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서로 기다려온 사람처럼 말없이 마주 봅니다 살기에 지쳐 저는 많은 걸 잃었습니다 잃은 만큼 또 다른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대도 시골 그곳에서 저 별을 보며 고단한 얼굴 문지르고 계신지요 부질없을지라도 먼 데서 반짝이는 별은 눈물겹고 이 새벽에 별 하나가 그대와 나를 향해 깨어 있으니 우리 서 있는 곳 어디쯤이며 또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저 별을 보면 알 듯합니다 딴엔 알 듯도 합니다 tirol's thought "살기에 지쳐 저.. 2018. 12. 13.
첫사랑을 기리는 노래 - 성석제 첫사랑을 기리는 노래 성석제 당신은 지붕으로 올라가 어디론가 갔지 길없는 곳 가운데를 열어둔 시간 속으로 그날 손을 흔들 때 별은 빛났네 별이야 늘 들여다보면 빛나는 것 당신이 이제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물어줘 제발 중얼대지 말고 외쳐봐 내 속을 텅텅 울려 밖으로 흘러내리게 흘러가도록 푸르게 푸르게 솟아오르는 숲을 보아도 아네 멀리 떨어진 집들, 속에서 흔들리는 따뜻한 공기 당신이 없을 때 사물들은 이리 친하네 당신이 영원히 사라져버려 내가 마음껏 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 문득 태양은 훈장처럼 걸리고 알 밴 바람은 미친 말처럼 달아나네 내가 인간이기에 지쳐 날선 도끼가 되어 당신께 날아가 박혔네 당신이 마침내 한 나무로 자란 그 자리에 그리고 녹슬어가리 별이야 들여다보면 늘 빛나기 마련 이제 사랑이.. 2018. 12. 7.
부고 - 이희중 부고 이희중 한 쉰 해를 살아보니 이제 알겠다,내가 나이를 먹는 게 아니고세월이 나를 둔 채 지나간다는 것.거울을 보지 않으면거울을 대신하는 무엇을 이용하지 않으면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나는 모를 수 있고잊을 수 있고 멀리할 수 있고,내 눈으로 볼 수 없는마음으로 보는 내 모습은백번 양보해도, 아직 삼십대. 그래서 나는 가끔, 아주 가끔한때 사랑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문득 떠오르거나그 사진을 보게 되거나같은 자리에 그와 잠시 있게 되면,태곳적 그를 가장 아끼던 순간의 기분이 되어가슴이 나부끼면서,그를 붙잡고 또 무슨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오래 하고 싶어진다.그러다가 아주 조금 거리가 생기면그와는 더 나아가지 못한 서사,그와 같이 살고, 오래 거듭 잠자리를 같이 하고아이를 낳아 기르며 그렇게 살아낸다른.. 2018. 11. 30.
바닥 - 이시영 바닥 이시영 가로등은 심심하여 발밑을 헤적이다가용기를 내어 은행나무 어깨에 손을 얹었다깜짝 놀란 은행나무가 노오란 잎들을 우수수 쏟았다가을이었다 * tirol's thought2-3주쯤 지났으려나?이 시가 실려있는 시집의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블로그에도 올려야지' 했는데 시간이 한참 흘렀다.그 사이에 은행잎은 다 지고 어제는 '기상관측 이래 최대'라는 첫눈이 왔다.가로등과 은행나무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되어 가기에 이런 눈이 내린 걸까?눈 다음에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가로등과 은행나무의 시간, 그대와 나의 시간기쁘거나 슬프거나 잊어버리거나 기억하거나 시간은 성실하게 흐르고 흐르네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2018.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