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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첫사랑을 기리는 노래 - 성석제

by tirol 2018. 12. 7.
첫사랑을 기리는 노래

성석제


당신은 지붕으로 올라가 어디론가 갔지
길없는 곳
가운데를 열어둔 시간 속으로
그날 손을 흔들 때 별은 빛났네
별이야 늘 들여다보면 빛나는 것

당신이 이제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물어줘
제발 중얼대지 말고 외쳐봐
내 속을 텅텅 울려
밖으로 흘러내리게 흘러가도록

푸르게 푸르게 솟아오르는 숲을 보아도 아네
멀리 떨어진 집들, 속에서 흔들리는 따뜻한 공기
당신이 없을 때 사물들은 이리 친하네
당신이 영원히 사라져버려
내가 마음껏 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

문득 태양은 훈장처럼 걸리고
알 밴 바람은 미친 말처럼 달아나네
내가 인간이기에 지쳐
날선 도끼가 되어 당신께 날아가 박혔네
당신이 마침내 한 나무로 자란 그 자리에

그리고 녹슬어가리
별이야 들여다보면 늘 빛나기 마련
이제 사랑이야 아이처럼 사라져 가리


<성석제, 낯선 길에 묻다, 민음사, 1991>

tirol's thought

날이 쨍하게 춥다.

최근 들은 건배사 중에 이런 게 있다.
이 세상에 없는 것 세가지와 귀한 것 세가지.
이 세상에 없는 것은, 
정답, 비밀, 공짜.
귀한 것은,
저 하늘의 별, 저 들판의 꽃, 내 옆의 너.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내 옆의 너를 위하여!

그러고보니 귀한 것들은 죄다 한 글자,
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주장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지붕 위로 올라가 어디론가 가버린'
너.
'별이야 들여다보면 늘 빛나기 마련'
'쨍'하고 빛나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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