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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새벽별을 보며 - 김사인

by tirol 2018. 12. 13.
새벽별을 보며

김사인


서울에서 보는 별은 흐리기만 합니다
술에 취해 들어와
그래도 흩어지는 정신 수습해
변변찮은 일감이나마 잡고 밤을 샙니다
눈은 때꾼하지만 머리는 맑아져 창 밖으로 나서면
새벽별 하나
저도 한 잠 못 붙인 피로한 눈으로
나를 건너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서로 기다려온 사람처럼
말없이 마주 봅니다
살기에 지쳐 저는 많은 걸 잃었습니다
잃은 만큼 또 다른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대도 시골 그곳에서 저 별을 보며
고단한 얼굴 문지르고 계신지요

부질없을지라도
먼 데서 반짝이는 별은 눈물겹고
이 새벽에
별 하나가 그대와 나를 향해 깨어 있으니
우리 서 있는 곳 어디쯤이며
또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저 별을 보면 알 듯합니다
딴엔 알 듯도 합니다

<김사인, 밤에 쓰는 편지, 문학동네, 2005>


tirol's thought

"살기에 지쳐 저는 많은 걸 잃었습니다/ 잃은 만큼 또 다른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그래도 그이는 행복하여라.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이며/ 또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하니.
아니 정말 아는지 모르는지는 누가 알 수 있을까.
누구도 모른다고 얘기하는 편이 나을지도.
그래서 '딴엔' 알 듯도 하다고 말하는 걸지도.
'딴엔' 때문에 시인은 행복한 게 아닐까.
누가 뭐라든 '딴엔' 알 듯도 하고,
그래서 행복하기도 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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