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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무렵 - 신동호 저물 무렵 신동호 황혼이 어깨위에서 오래도록 머물러주길 바랬습니다 손때를 많이 탄 느티나무 밑둥으로 풀벌레들이 기어드는 무렵 언덕으로 저녁연기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마음 한 켠이 아득해지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아 거기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겨울 하늘에 맨 돌팔매질을 하던 황혼이 물든 들녁을 이내 바라보고 섰던 언덕배기엔 썰매타기와 연날리기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쓸쓸한 저녁을 위해, 저물무렵 못내 그리운 마음의 아련함이란 그 때문일까요 낮동안, 그래서 아이들이 피운 부산스러움과 먼지더미는 아름다운 게 아닌지요 언덕배기에 앉으면 당신이 자라온 마을과 지나온 길이 함께 어두워져가고 그때 불어오던 바람이 아 당신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가슴 시리지 않던가요 지나온 길위에.. 2003. 10. 14.
양떼 염소떼 - 이문재 양떼 염소떼 이문재 아주 편안한 걸음으로 해 지는 서편으로 걸어갈 수 있다면 풀피리 소리 잔등이나 이마 쪽에서 천천히 풀어지고 양떼 사이로 흐르는 강을 따라 침엽수 무성한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면 발자국이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어 적은 양의 빗물도 고이게 하고 풀잎들을 물에 지치게 하고 가장 가까운 계곡을 찾아내 스스로 흘러나가게 하고 양떼 염소떼 하늘로 올라가 구름의 형상으로 자라나 저것이 양떼구름이야 염소떼구름이야 하고 지상의 슬픈 민족들이 신기해하거나 즐거워할 수 있다면 나는 양떼 염소떼 수천 마리 이끌고 어떤 종교의 발생지처럼 나는 죽는 곳을 죽을 때까지 가꾸어 놓을 수 있다 /이문재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민음사/ * tirol's thought 오늘, 하늘이 .. 2003. 9. 21.
바람에도 길이 있다 - 천상병 바람에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tirol's thought 광화문에 가서 눈크게 뜨시고 찾아보시라. (사실은 보통으로 떠도 조금만 둘러보면 찾을 수 있다.) 2003. 9. 18.
저물 무렵 - 최갑수 저물 무렵 최갑수 일찍 나온 별은 슬프다 오늘은 녹슨 슬레이트 지붕 하나를 감싸안기에도 파라락 파라락 힘에 겨운 저 별 어제는, 사랑에 관해 이제나 저제나 망설이기만 하고 있던 저 별 나를 비추는 저 별까지는 얼마나 먼가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던 그 옛날 그 어느 날까지는 별아, 또 얼마만큼이나 먼가 * tirol's thought 어제는 M과 술을 마셨다. 어제 일이 잘 생각 안난다고 M이 문자 메세지를 보내왔다. 전화를 걸어서 '별 일 없었다'고 얘기해주었다. 사실 '별 일'도 없었지만 '별 말'도 없었다. 그냥 편하게 떠들며 마셨다. 즐거운 술 자리는 '어떤 얘기를 하는가' 가 아니라 '어떤 분위기인가'에 따라 정해진다. 2003. 9. 8.
2003년 8월에 읽은 책 1. 안나가발다 저, 이세욱 역,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문학세계사, 2002. 2. 이성복,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문학동네, 2001. 3. 마루야마겐지 저, 김춘미 역, 물의 가족, 현대문학, 1994. 아울러 7월부터 읽어오던 몇권의 책들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을 읽었다. 많이 읽지 못했다. 책읽기의 흐름을 잃어버린 것 같다. 달리기를 하다가 리듬을 놓쳐서 불규칙적으로 헉헉대는 모습이 떠오른다. 숨고르기를 좀 하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근데 솔직히 자꾸 지친다. 물을 너무 마셔서 뱃속이 출렁거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2003. 9. 4.
사랑은 불협화음 - 박상우 사랑은 불협화음 박상우 1. 남자가 걸으면 아랫도리가 흔들리고 여자가 걸으면 윗도리가 흔들립니다 남자는 윗도리에 흔들 게 없어서 윗도리가 흔들리지 않고 여자는 아랫도리에 흔들릴 게 없어서 아랫도리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남자는 흔들리는 여자의 윗도리가 신기(?)하고 여자는 흔들리는 남자의 아랫도리가 신기(?)합니다 흔들릴 게 없으면 흔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 남자는 흔들림이 없는 여자의 아랫도리를 선망합니다 여자는 자기가 흔들리는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부분들을 채우려합니다 남자는 자기가 흔들리는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부분들을 채우려합니다 여자는 흔들림이 없는 곳을 흔들리는 부분으로 채우려 합니다 남자는 흔들림이 없는 곳을 흔들리는 부분으로 채울 합니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것에 의해 흔들리고 흔들리는 것.. 2003.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