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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저물 무렵 - 신동호

by tirol 2003. 10. 14.
저물 무렵

신동호


황혼이 어깨위에서 오래도록 머물러주길 바랬습니다
손때를 많이 탄 느티나무 밑둥으로 풀벌레들이 기어드는 무렵
언덕으로 저녁연기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마음 한 켠이 아득해지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아 거기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겨울 하늘에 맨 돌팔매질을 하던
황혼이 물든 들녁을 이내 바라보고 섰던
언덕배기엔 썰매타기와 연날리기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쓸쓸한 저녁을 위해, 저물무렵 못내 그리운 마음의 아련함이란
그 때문일까요 낮동안, 그래서 아이들이 피운 부산스러움과 먼지더미는 아름다운 게 아닌지요
언덕배기에 앉으면 당신이 자라온 마을과
지나온 길이 함께 어두워져가고
그때 불어오던 바람이 아 당신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가슴 시리지 않던가요
지나온 길위에 덮인 어둠이 결코 당신이 걸어온 길을 지울수 없기에
언덕배기 느티나무에 기대앉은 당신의 마음은 쓸쓸하지 않던가요
쓸쓸한 것은 그리운 사람 많은 탓이지요 아쉬운 날이 많은 탓이지요
이미 마음속에 그려진 풍경. 아름답던 당신
알지요 언덕배기에 바람이 불고 날이 저물고 그런 내내
황혼이 어깨위에서 오래도록 머물러주길 바랬습니다  

/문학동네 시집13 신동호 시집 '저물무렵' /


* tirol's thought

'저물 무렵 못내 그리운 마음의 아련함'이 밀려드는
쓸쓸한 가을 저녁에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는 경우는,
유난히 슬프거나, 기쁘거나, 힘들때 였던 것 같은데
요즘의 내 심정은 그 중 어디에 해당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리운 사람 많은 탓이겠지요 아쉬운 날이 많은 탓이겠지요'
그립습니다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