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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에 읽은 책 1. 로맹가리 저, 한선예 옮김, 유럽의 교육, 책세상, 2003. 2.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뒷모습, 현대문학, 2002. 3. 이응준,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문학과 지성사, 1996. 4. 강재훈, 강재훈 사진집 '분교-들꽃피는 학교', 학고재, 1998. 5. 이성복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 지성사, 2003. 6. 이응준 시집,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세계사 시인선, 2002. 7. 리처드 파인만 강의, 박병철 옮김,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이야기, 승산, 2003. 8. 안토니오 그람시, 양희정 옮김, 감옥에서 보낸 편지, 민음사, 2000. 9. 로버트 그린, 강미경 옮김, 유혹의 기술, 이마고, 2002. 2003. 8. 3.
그날, 정림사지 5층 석탑 - 황동규 그날, 정림사지 5층 석탑 황동규 성긴 눈발 빗방울로 뿌리다 다시 눈발 되어 날리는 눈발 날리다 다시 빗방울로 흩뿌리는 그런 지워버리고 싶은 날. 텅 빈 뜨락에 혼자 있는 그대 크도 작도, 늙도 젊도 않게 속 쓰리지도 않게 뒤로 돌아가 보아도 어디 따로 감춘 열(熱)도 없이 눈 비 속에서 잊힌 듯 숨쉬고 있다. 그 들숨 날숨 안에 들면 사는 일이 온통 성겨진다. '춥니?' '아니.' '발끝까지 젖었는데?' '어깨가 벌써 마르고 있어.' '조금 전에 우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네 눈으로 본 걸 옮기지.' /문학사상 2003년 4월호/ * tirol's thought '네 눈으로 본 걸 옮기지' 소문과 추측과 짐작과 억지 투성이의 세상을 향해 석탑이 그윽하게 하는 말이 참 근사하다. 2003. 7. 29.
떨림 - 강미정 떨림 -그대에게- 강미정 젖은 수건 속에 오이씨를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두었죠 촉 나셨는지 보아라, 싸여진 수건을 조심조심 펼치면 볼록하게 부푼 오이씨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입을 반쯤만 열고 있었죠 촉 나시려고 파르르 몸 떠는 것 같아서 촉 보려는 내 마음은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조심조심 수건을 펼쳤던 저의 손은 또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촉 나셨는지 보아라, 아부지 촉 아직 안 나왔슴더, 빛이 들지 않게 얼른 덮어 둬라, 빛을 담기 위해선 어둠도 담아야 한다는 것을 한참 뒤 나중에야 알았지만요 그때는 빨리 촉 나시지 않는 일이 자꾸만 펼쳐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오래 들여다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촉 날 때까지 걱정스레 내 마음을 떨었죠 /시와 현장 2003년 봄호/ * tirol's t.. 2003. 7. 22.
칠 일째 - 이응준 칠 일째 이응준 카프카는 체코어로 까마귀라는 뜻이다. 나는 열여덟에 그런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나는 서른이 되던 날 밤 차라리 그런 이름이었으면 했다. 바이러스는 라티어로 毒이라는 뜻이다. 나는 요즘 그런 이름으로 지낸다. 납인형 같은 生이 經을 덮고 칠일째 아무 말도 않고 있다. 이 세계를 소독할 유황불을 기다리고 있다. /이응준 시집,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세계사, 2002/ * tirol's thought 나는 요즘 무슨 이름으로 지내고 있나? 2003. 7. 20.
아, 입이 없는 것들 - 이성복 51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저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 지성사, 2003/ * tirol's thought 오랫만에 이성복 시집을 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복이 오랫만에 시집을 냈다'가 먼저겠지만...-_-;) 2003. 7. 13.
장마를 견디며 - 이응준 장마를 견디며 이응준 물소들이 지붕 위를 지나간다. 모기의 목소리 예전보다 더 낭랑해지고 나는 또다시 B형의 그리움을 벽에 피칠하며 어설픈 잠결에 불안해 하는 것이다. 당신은 흔들리는 무덤 같아요, 라고 적어 보냈던 편지 쓰지도 않고 썼다고 우기면 내 마음 관보다 더 깊어져 방 안 가득 곰팡이꽃 피어 오르지만 나는 목침을 베고 누워 자욱한 물안개까지만 생각하기로 하고 비 오는 시절의 주소를 모두 잊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모가지부터 가슴까지 수수깡처럼 꺾이는 나라에 살았던 경력이 있는 법이다. 부끄러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심야일기예보로 다가오는 밤 1시의 태풍을 사귀어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탱크가 지나간 폐허 위에도 홍등의 거리가 다시 세워지듯이 나는 믿는다. 저 물소들 밟고 지나가는 마음 한 켠에서부.. 2003.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