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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양떼 염소떼 - 이문재

by tirol 2003. 9. 21.
양떼 염소떼

이문재


아주 편안한 걸음으로 해 지는 서편으로 걸어갈 수 있다면
풀피리 소리 잔등이나 이마 쪽에서 천천히 풀어지고
양떼 사이로 흐르는 강을 따라 침엽수 무성한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면
발자국이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어
적은 양의 빗물도 고이게 하고 풀잎들을 물에 지치게 하고
가장 가까운 계곡을 찾아내 스스로 흘러나가게 하고
양떼 염소떼 하늘로 올라가 구름의 형상으로 자라나
저것이 양떼구름이야 염소떼구름이야 하고
지상의 슬픈 민족들이 신기해하거나 즐거워할 수 있다면
나는 양떼 염소떼 수천 마리 이끌고 어떤 종교의 발생지처럼
나는 죽는 곳을 죽을 때까지 가꾸어 놓을 수 있다

/이문재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민음사/


* tirol's thought

오늘, 하늘이 그랬다.
하늘로 올라가 구름의 형상으로 자라난 양떼 염소떼 구름을 보았다.
저것이 양떼구름이야 염소떼 구름이야 하며
신기해하거나 즐거워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했다.TT
그래도 가끔씩 담배를 피우러나가서 유리창을 통해 내다보는 하늘 조차 멋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