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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롤의 열세번째 포임레러 [2003.11.11. TUE. 티롤의 열세번째 포임 레러~] ◈ tirol's greeting "오랫만입니다"라는 말보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열세번째 포임레러입니다. 확인을 해보니 지난 봄, 좀더 정확히 말해서 5월18일자 포임레러 이후 근 6개월만에 띄우게 되는군요. 그간 모두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 ◈ today's poem 흔들리는 것들 나희덕 저 가볍게 나는 하루살이에게도 삶의 무게는 있어 마른 쑥풀 향기 속으로 툭 튀어오르는 메뚜기에게도 삶의 속도는 있어 코스모스 한 송이가 허리를 휘이청하며 온몸으로 그 무게와 속도를 받아 낸댜. 어느 .. 2003. 12. 3.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브레히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Schlechte Zeit fur Lyrik )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김광규 역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 2003. 11. 11.
칼의 노래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 2003. 11. 4.
저물 무렵 - 신동호 저물 무렵 신동호 황혼이 어깨위에서 오래도록 머물러주길 바랬습니다 손때를 많이 탄 느티나무 밑둥으로 풀벌레들이 기어드는 무렵 언덕으로 저녁연기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마음 한 켠이 아득해지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아 거기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겨울 하늘에 맨 돌팔매질을 하던 황혼이 물든 들녁을 이내 바라보고 섰던 언덕배기엔 썰매타기와 연날리기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쓸쓸한 저녁을 위해, 저물무렵 못내 그리운 마음의 아련함이란 그 때문일까요 낮동안, 그래서 아이들이 피운 부산스러움과 먼지더미는 아름다운 게 아닌지요 언덕배기에 앉으면 당신이 자라온 마을과 지나온 길이 함께 어두워져가고 그때 불어오던 바람이 아 당신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가슴 시리지 않던가요 지나온 길위에.. 2003. 10. 14.
양떼 염소떼 - 이문재 양떼 염소떼 이문재 아주 편안한 걸음으로 해 지는 서편으로 걸어갈 수 있다면 풀피리 소리 잔등이나 이마 쪽에서 천천히 풀어지고 양떼 사이로 흐르는 강을 따라 침엽수 무성한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면 발자국이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어 적은 양의 빗물도 고이게 하고 풀잎들을 물에 지치게 하고 가장 가까운 계곡을 찾아내 스스로 흘러나가게 하고 양떼 염소떼 하늘로 올라가 구름의 형상으로 자라나 저것이 양떼구름이야 염소떼구름이야 하고 지상의 슬픈 민족들이 신기해하거나 즐거워할 수 있다면 나는 양떼 염소떼 수천 마리 이끌고 어떤 종교의 발생지처럼 나는 죽는 곳을 죽을 때까지 가꾸어 놓을 수 있다 /이문재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민음사/ * tirol's thought 오늘, 하늘이 .. 2003. 9. 21.
바람에도 길이 있다 - 천상병 바람에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tirol's thought 광화문에 가서 눈크게 뜨시고 찾아보시라. (사실은 보통으로 떠도 조금만 둘러보면 찾을 수 있다.) 2003.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