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영웅인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다시, 만경강에 바친다.
2001년 봄 김훈
*********************
"빨려들 듯이 읽었다. 허무, 의미없음과의 싸움이 감동을 줬다." -박완서
"작가가 문체에 들인 노력, 힘들여 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유종호
"바뀐 東人文學賞의 취지인 '장편' 우선 정신에도 잘 부합하는 작품" -김주영
"선조의 선병질적인 성격에 대한 묘사 등 자료조사도 뛰어나다" -정과리
■ 김 훈
1948년 서울 출생.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지은 책으로는 독서 에세이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문학기행1·2』(공저), 『풍경과 상처』,『자전거 여행』,『원형의 섬 진도』, 장편 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등이 있으며, 외국 문학을 여러 권 번역했다.
그에게는 생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생의 긍정을 배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이 따른다.
*****************************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었다.
하도 유명한 책이라
지레 삐딱하게 생각하고는
미뤄두고 있었는데
읽어보고 나니
이 경우엔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순신의 목소리와 김훈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배우로 치자면
배역에 완전히 묻이지 않고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배우라고 할까
그러나
어색하거나 거슬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한겨레 신문기자 생활 때려치시고
지금은 뭐하시며 지내시는지...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영웅인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다시, 만경강에 바친다.
2001년 봄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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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려들 듯이 읽었다. 허무, 의미없음과의 싸움이 감동을 줬다." -박완서
"작가가 문체에 들인 노력, 힘들여 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유종호
"바뀐 東人文學賞의 취지인 '장편' 우선 정신에도 잘 부합하는 작품" -김주영
"선조의 선병질적인 성격에 대한 묘사 등 자료조사도 뛰어나다" -정과리
■ 김 훈
1948년 서울 출생.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지은 책으로는 독서 에세이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문학기행1·2』(공저), 『풍경과 상처』,『자전거 여행』,『원형의 섬 진도』, 장편 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등이 있으며, 외국 문학을 여러 권 번역했다.
그에게는 생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생의 긍정을 배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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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었다.
하도 유명한 책이라
지레 삐딱하게 생각하고는
미뤄두고 있었는데
읽어보고 나니
이 경우엔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순신의 목소리와 김훈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배우로 치자면
배역에 완전히 묻이지 않고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배우라고 할까
그러나
어색하거나 거슬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한겨레 신문기자 생활 때려치시고
지금은 뭐하시며 지내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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