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663

바지씨 - 이진우 바지씨 이진우 가슴살이 흘러 허리에서 잠깐 멈춘 것뿐인데 십년 넘게 입는 바지씨가 냉정하게 허리를 조이신다 과식도 몰랐고 탐식도 몰랐다 다이어트도 모르고 조깅도 몰랐다 술을 마실 때 안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조금 먹고 조금 버리고 조금 싸고 조금 벌고 조금 쓰고 조금조금 조심하며 살았다 결혼하고 아이 둘 낳고 학부형이 된 세월 동안 바지는 늘 28인치 무거운 것은 아래로 흐르는 법 가슴살이 허리를 지나고 허벅지를 지나 땅에 닿고 땅 속까지 파고드는 날이 오면 알겠지 내 욕심의 무게 바지씨, 사정도 없이 허리를 조르신다 * source : http://www.winterindia.co.kr * tirol's thought 한번 불어난 살은 좀체로 빠질 줄을 모른다. 늘어난 뱃살을 보고 손짓하는 사람들에게.. 2004. 8. 11.
오 바람아, 이 열기를 열어 젖혀라 Heat Hilda Doolittle (1886-1961) O wind, rend open the heat, Cut apart the heat, Rend it to tatters. Fruit cannot drop Through this thick air -- Fruit cannot fall into heat That presses up and blunts The points of pears And rounds the grapes. Cut the heat -- Plough through it, Turning it on either side Of your path. 열기 힐다 둘리틀 오 바람아, 이 열기를 열어 젖혀라 베어버려라 이 열기를 찢어서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이 두터운 공기 사이론 과일 하나 떨어지.. 2004. 7. 30.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2004. 7. 14.
뭐가 있다 '파리의 연인'이 하도 난리라길래 나도 한번 봤다. 요 아래 만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이 안에 너 있다'라고 이동건이 김정은에게 얘기하는 장면이 있는 회였는데, 순정만화 같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오히려 홍승우의 만화는 너무 현실적이다. 2004. 7. 13.
음악 - 이성복 음악 이성복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메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tirol's thought 아내의 말에 따르면 내가 잠꼬대를 한단다. 잠결에 알 수 없는 얘기를 중얼거린다고 한다.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도 같다. 꿈 속에서 나는,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데 말이 잘 안 나온다. 어디론가 전화를 해야겠는데 눌러야 할 번호는 못누르고 자꾸만 다른 번호를 누른다. 열차는 떠나고, 다리는 끊기고 내가 아는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답답하다. 꿈 속의 나도, 꿈 밖의 나도, 있어야 할.. 2004. 7. 13.
감옥 - 강연호 감옥 강연호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 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라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며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앉히는데 고장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메인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tirol's thought 감옥의 안과 바깥은 어느쪽에서 잠그느냐에 따라 나뉜다. 바깥 쪽에서 잠그는 것이 감옥의 속성이며 안에서 잠그는 것은 감옥이 아니라 요새라고 부르는 편이 맞다. 그는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갇힌 것은 아내가 아니라 그다. 문을 잠그는 것은 .. 2004.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