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672 (펌) 어떤 정물, 귤과 매화와 책꽂이 - 장석남 어떤 정물, 귤과 매화와 책꽂이 ― 브람스의 소품 장석남(시인) 노란 귤들이 있다. 하나는 껍질이 벗겨진 채 반만 있다. 귤들이 놓인 흰 접시에 떨어진 불빛은 당연히 귤과 함께 따뜻한 빛이다. 껍질들이 어지간히 말라서 이 귤을 먹은 게 언제더라 싶다. 귤 옆에는 전화기가 놓였다. 오래된 구형 손 전화기다. 내가 전화기를 하도 자주 잃어버림으로 이번엔 새로 사지 말라며 후배가 물려준 것이다. 잃어버려도 괜찮도록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 그래도 통화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대견하다. 그 곁에는 녹차 잔이 놓여 있다. 일인용 다구(茶具)이기 때문에 그 뚜껑에는 차 잎들이 젖은 채 담겨져 있다. 차 맛을 생각해 본다. 녹차는 뭐니뭐니 해도 첫잔이 제일 좋다. 약간 뜨끈.. 2003. 1. 2. 비가 와도 젖은 者는 - 오규원 비가 와도 젖은 者는 오규원 순례 -1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江은 젖지 않는다.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江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魚族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은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번뇌, 날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 /오규원 시집, 사랑의 기교, 민음사, 1978/ * t.. 2003. 1. 1. 티롤의 여섯번째 포임레러 [2002.12.12. THU. 티롤의 여섯번째 포임 레러~] ◈ tirol's greeting 열흘만에 여섯번째 시를 보냅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거리가 머리에서 마음까지라지만 마음에서 팔다리까지의 거리도 만만치는 않은가 봅니다. 날이 제법 추워졌지요? 모든 건 원래 생겨먹은대로일때가 가장 좋은 법이지요. 그런데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하늘이 더 맑아보이더군요. 쨍하고 금이 갈듯이. =-=-=-=-=-=-=-=-=-=-=-=-=-=-=-=-=-=-=-=-=-=- ◈ today's poem 사랑은 김남주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2002. 12. 12. 2002년 11월에 읽은 책 1. 김훈,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생각의 나무, 2002. 2. 정운영,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 생각의 나무, 2001. 3. M.스코트 펙 저, 윤종석 역, 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두란노, 2002. 4. 무라카미 류 저, 서영 역,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 동방미디어, 1998. 5.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웅진닷컴, 2002. 2002. 12. 9. 자작나무 뱀파이어 - 박정대 자작나무 뱀파이어 박정대 그리움이 이빨처럼 자라난다 시간은 빨랫집게에 집혀 짐승처럼 울부짖고 바다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별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의 상처, 눈물보다 더 깊게 빛난다, 聖所 별들의 운하가 끝나는 곳 그 고을 지나 이빨을 박을 수 있는 곳까지 가야한다, 차갑고 딱딱한 공기가 나는 좋다, 어두운 밤이 오면 내 영혼은 자작나무의 육체로 환생한다 내 영혼의 살결을 부벼대는 싸늘한 겨울바람이 나는 좋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욕망이 고드름처럼 익어간다 눈에 덮인 깊은 산속, 밤새 눈길을 걸어서라도 뿌리째 너에게로 갈 테다 그러나 네 몸의 숲속에는 아직 내가 대적할 수 없는 무서운 짐승이 산다 /민음시선, 박정대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 ti.. 2002. 12. 3. 티롤의 다섯번째 포임레러 [2002.12.2. MON. 티롤의 다섯번째 포임 레러~] ◈ tirol's greeting 12월이 되었습니다. 감기는 지나갔고요. 눈, 캐롤, 크리스마스, 송년회... 해마다 오는 년말이건만 어김없이 사람들은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며 가슴 설레합니다. 저요? 저야, 우울하죠. 서른셋과 서른넷이란 숫자가 주는 느낌의 차이를 가늠해보며 속수무책으로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야하는 심정이 유쾌발랄할리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 특기가 '정리정돈'이고 취미가 '계획세우기'인지라 아프고 바쁘단 핑계로 정신없이 지낸 11월과는 달리 12월엔 새 마음으로 정리정돈 잘 하고 새해 계획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 2002. 12. 2. 이전 1 ··· 95 96 97 98 99 100 101 ··· 1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