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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자작나무 뱀파이어 - 박정대

by tirol 2002. 12. 3.
자작나무 뱀파이어

박정대


그리움이 이빨처럼 자라난다
시간은 빨랫집게에 집혀 짐승처럼 울부짖고
바다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별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의 상처,
눈물보다 더 깊게 빛난다, 聖所
별들의 운하가 끝나는 곳
그 고을 지나 이빨을 박을 수 있는 곳까지
가야한다, 차갑고 딱딱한 공기가
나는 좋다, 어두운 밤이 오면
내 영혼은 자작나무의 육체로 환생한다
내 영혼의 살결을 부벼대는
싸늘한 겨울바람이 나는 좋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욕망이 고드름처럼 익어간다
눈에 덮인 깊은 산속, 밤새 눈길을 걸어서라도
뿌리째 너에게로 갈 테다
그러나 네 몸의 숲속에는
아직 내가 대적할 수 없는
무서운 짐승이 산다

/민음시선, 박정대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 tirol's thought

지지난 주였던가? 박정대와 권혁웅의 시집을 사서 읽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고대 국문과 출신들인데 시는 많이 다르다.(써놓고 보니 좀 이상한 문장이긴 하다. 출신학교가 같다고 시가 비슷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박정대의 시에는 이미지가 춤춘다. 현란하다. 그리고 젊은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들, 이미지들, 감정들. 노래에도 그런 게 있지 않은가? '대학가요제 풍의 노래들'이라고 말할 때 짐작되어지는 코드들.

'그리움이 이빨처럼 자라는' 자에게
'눈물보다 더 깊게 빛나는' 별들은 언제나 상처다.

나도
'내 영혼의 살결을 부벼대는 싸늘한 겨울바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