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
-그대에게-
강미정
젖은 수건 속에 오이씨를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두었죠
촉 나셨는지 보아라,
싸여진 수건을 조심조심 펼치면
볼록하게 부푼 오이씨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입을 반쯤만 열고 있었죠
촉 나시려고 파르르 몸 떠는 것 같아서
촉 보려는 내 마음은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조심조심 수건을 펼쳤던
저의 손은 또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촉 나셨는지 보아라,
아부지 촉 아직 안 나왔슴더,
빛이 들지 않게 얼른 덮어 둬라,
빛을 담기 위해선 어둠도 담아야 한다는 것을
한참 뒤 나중에야 알았지만요
그때는 빨리 촉 나시지 않는 일이
자꾸만 펼쳐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오래 들여다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촉 날 때까지 걱정스레 내 마음을 떨었죠
/시와 현장 2003년 봄호/
-그대에게-
강미정
젖은 수건 속에 오이씨를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두었죠
촉 나셨는지 보아라,
싸여진 수건을 조심조심 펼치면
볼록하게 부푼 오이씨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입을 반쯤만 열고 있었죠
촉 나시려고 파르르 몸 떠는 것 같아서
촉 보려는 내 마음은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조심조심 수건을 펼쳤던
저의 손은 또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촉 나셨는지 보아라,
아부지 촉 아직 안 나왔슴더,
빛이 들지 않게 얼른 덮어 둬라,
빛을 담기 위해선 어둠도 담아야 한다는 것을
한참 뒤 나중에야 알았지만요
그때는 빨리 촉 나시지 않는 일이
자꾸만 펼쳐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오래 들여다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촉 날 때까지 걱정스레 내 마음을 떨었죠
/시와 현장 2003년 봄호/
* tirol's thought
콩나물국 끓일 때 자꾸 뚜껑 열면 비린내 나서 못쓴다.
밥 뜸들일 때도 그렇고
사랑 할 때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데도 말이다.
그럴 수록 자꾸 열어보고 싶은 마음.
어느날 문득 그대에게 이르는 길,
멀어지는 것 같은 두려움.
자꾸만 열어보려했던 때문인 것 같아서
오래 들여다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촉 날 때까지 걱정스레 내 마음 떨겠지.
콩나물국 끓일 때 자꾸 뚜껑 열면 비린내 나서 못쓴다.
밥 뜸들일 때도 그렇고
사랑 할 때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데도 말이다.
그럴 수록 자꾸 열어보고 싶은 마음.
어느날 문득 그대에게 이르는 길,
멀어지는 것 같은 두려움.
자꾸만 열어보려했던 때문인 것 같아서
오래 들여다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촉 날 때까지 걱정스레 내 마음 떨겠지.
'시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불협화음 - 박상우 (0) | 2003.08.08 |
---|---|
그날, 정림사지 5층 석탑 - 황동규 (0) | 2003.07.29 |
칠 일째 - 이응준 (0) | 2003.07.20 |
아, 입이 없는 것들 - 이성복 (0) | 2003.07.13 |
장마를 견디며 - 이응준 (0) | 2003.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