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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장마를 견디며 - 이응준

by tirol 2003. 7. 3.
장마를 견디며

이응준


물소들이 지붕 위를 지나간다.

모기의 목소리 예전보다 더 낭랑해지고
나는 또다시 B형의 그리움을 벽에 피칠하며
어설픈 잠결에 불안해 하는 것이다. 당신은
흔들리는 무덤 같아요, 라고
적어 보냈던 편지
쓰지도 않고 썼다고 우기면
내 마음 관보다 더
깊어져 방 안 가득 곰팡이꽃 피어 오르지만

나는 목침을 베고 누워
자욱한 물안개까지만 생각하기로 하고
비 오는 시절의 주소를 모두 잊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모가지부터
가슴까지 수수깡처럼 꺾이는 나라에 살았던
경력이 있는 법이다. 부끄러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심야일기예보로 다가오는 밤 1시의 태풍을

사귀어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탱크가 지나간 폐허 위에도
홍등의 거리가 다시 세워지듯이
나는 믿는다. 저 물소들 밟고 지나가는
마음 한 켠에서부터 이미

벽돌 한 장, 한 장,
새로운 도시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 tirol's thought

어제 EBS의 문학수첩(맞나?) 이란 프로그램에 이응준의 '레몬트리'라는 소설이 소개되는 걸 봤다. 독백형식의 드라마로 소설을 풀어내는 프로그램이었는데...보면서...예전에 어렴풋이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런데 글로 읽었던 걸 영상과 소리로 보고 들으니...느낌이 남달랐다. 아침에 출근해서 Yes24로 이응준을 검색해보니 시로 등단한 소설가였다. 나와 동갑인 1970년생. 얼핏 정서가 맞는 것 같다. 좀더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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