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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편지 - 이동진 할머니 편지 이동진 느그들 보고 싶어 멧 자 적는다 추위에 별 일 없드나 내사 방 따시고 밥 잘 묵으이 걱정 없다 건너말 작은 할배 제사가 멀지 않았다 잊아뿌지 마라 몸들 성커라 돈 멧 닢 보낸다 공책 사라 * tirol's thought 영화 "집으로"가 예상을 깨고 3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린다지요? "집으로"의 할머니 생각이 나서 옮겨봅니다. 2002. 4. 26.
행복론 - 최영미 행복론 최영미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고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 tirol's thought 애인과 이별 후 버려야할 열가지 첫째.. 2002. 4. 15.
사랑노래 5 - 김용택 사랑노래5 김용택 마음의 끝을 보고 걸어서 마음의 끝에 가면 한쪽 어깨가 기울어 저뭄에 머리 기대고 핀 외로운 들꽃 하나 보게 되리 팍팍하게 걸어온 저문 얼굴로 헐은 어깨 기울이면 야윈 어깨 기대오던 저문 그대 마음의 끝에 서서 저뭄의 끝에 기대섰던 우리 마음의 끝을 적시며 그대는 해지는 강물로 꽃잎같이 지고 한쪽이 쓸쓸한 슬픔으로 나는 한세상을 어둑어둑 걷게 되리 * tirol's thought 유행가를 부르는 심정으로, 김용택의 오래된 사랑노래를 읽는다. 유행가란게 원래 좀 유치하기도 하고, 매양 그게 그거인거 같지만 또 그렇기에 더욱 정이 가기도 하고 가슴에 와 닿기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난 또 한 세상을 어둑어둑걸어서 술이나 마시러 가야겠다. 2002. 4. 12.
길에 관한 독서 - 이문재 길에 관한 독서 이문재 1 한때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주곤 했을 때 어둠에도 매워지는 푸른 고추밭 같은 심정으로 아무 데서나 길을 내려서곤 하였다 떠나가고 나면 언제나 암호로 남아 버리던 사랑을 이름부르면 입 안 가득 굵은 모래가 씹혔다 2 밤에 길은 길어진다 가끔 길 밖으로 내려서서 불과 빛의 차이를 생각다 보면 이렇게 아득한 곳에서 어둔 이마로 받는 별빛 더이상 차갑지 않다 얼마나 뜨거워져야 불은 스스로 밝은 빛이 되는 것일까 3 길은 언제나 없던 문을 만든다 그리움이나 부끄러움은 아무 데서나 정거장의 푯말을 세우고 다시 펴보는 지도, 지도에는 사람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4 가지 않은 길은 잊어버리자 사람이 가지 않는 한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의 속력은 오직 사람의 속력이다 줄지어 가는 길은 여간.. 2002. 3. 13.
2월 - 이외수 2 월 이외수 도시의 트럭들은 날마다 살해당한 감성의 낱말들을 쓰레기 하치장으로 실어 나른다 내가 사랑하는 낱말들은 지명수배 상태로 지하실에 은둔해 있다 봄이 오고 있다는 예감 때문에 날마다 그대에게 엽서를 쓴다 세월이 그리움을 매장할 수는 없다 밤이면 선잠결에 그대가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 소스라쳐 문을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뜬눈으로 정박해 있는 도시 진눈깨비만 시린 눈썹을 적시고 있다 * tirol's thought 문학적 성취도와 상관없이, 때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 그리고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어떤 이유로 끌리는 시가 있다. 2월. 내게는 진눈깨비로 기억되는 달. 올겨울은 날씨가 너무 따뜻하다. 2002. 2. 6.
성북역 - 강윤후 성북역 강윤후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다가 나는 알게 되었지 이미 네가 투명인간이 되어 곁에 서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불어 기다리기로 한다. 강윤후 시집 ,문학과 지성사 * tirol's thought 보이는 것들만을 믿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서글픈 인생아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당신과 더불어 당신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2002.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