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672 분지일기 - 이성복 분지일기 이성복 슬픔은 가슴보다 크고 흘러가는 것은 연필심보다 가는 납빛 십자가 나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고 아침부터 해가 지는 분지, 나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고 촘촘히, 촘촘히 내리는 비, 그 사이로 나타나는 한 분 어머니 어머니, 어려운 시절이 닥쳐올 거예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울고 있어요 다시 봄이 왔다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류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둥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 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 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 2001. 11. 24. 먼 곳에서부터 - 김수영 먼 곳에서부터 김수영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2001. 11. 7. 가을 저녁의 시 - 김춘수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2001. 10. 24. 가난한 사랑노래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2001. 10. 17. 빈집 - 기형도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문학과 지성'시인선80.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77p. * tirol's thought 94.05.20. 13:25 청주행 승차권(승객용). 좌석번호 1. /1990.5,21.奎/015-241-0797.박상준/특별써비스권, 하트프라자 노래방/42p. '물 속의 사막'이란 시 제목에 동그라미/17p. '조치원'이라는 시 다섯번째 줄 '젖은 담배 필터 같은 기침 몇 개를'이란 부분에 밑줄./빈 집에.. 2001. 9. 16. 편지 1 - 이성복 편지 1 이성복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 이성복 시집'그 여름의 끝'/ * tirol's thought 이문세 노래 중에 '옛사랑'이란 노래가 있지. 그 노래 가사 중에...'사~랑이란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구절이 있지. 내게 지금 사랑은? 지겨우냐구? 내게 지금...사랑은 너무 멀리 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만이 가까이 있을 뿐. 사랑이 나를 지겨워하기 시작한 걸까?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그런 사랑은 도데체 어.. 2001. 9. 16. 이전 1 ··· 104 105 106 107 108 109 110 ··· 1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