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야에서

가상칠언 묵상문

by tirol 2006. 4. 10.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

예수님
나는 당신을 십자가에 매달지 않았습니다.
못박지 않았습니다.
창으로 찌르지 않았습니다.
조롱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2000년 전 그곳, 골고다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그곳에 있었더라면
그들 곁에서 당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을 내 안의 나를.
아니 오늘 이곳에서도 나는 날마다
당신을 외면하고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당신을 조롱하는 사람들 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못박았습니다.
창으로 찔렀습니다.
조롱하였습니다.
오늘 여기 있는 내가
2000년 전 그곳, 골고다의 그들입니다.

당신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그들을 용서하셨습니까
무슨 이유로 이런 나를 용서하십니까
무지하고 완악한 우리 편을 드십니까
알든 모르든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들은
우리는
죄없는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한 자들이 아닙니까

아버지
그런 그들을
이런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 피 흘리게 하신 당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우리의 용서를 구하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 피의 용서가 우리의 죄를 씻습니다.
멈출 수 없는 감사의 눈물이 됩니다.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날마다 우리도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소서.

Note)
어제 예배 후 발표했던 가상칠언 조별 묵상문을 올립니다.
제가 속한 1조는 첫번째 말씀에 대하여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고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기초로 묵상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조를 대표하여 묵상문을 작성하게 되어 처음엔 적잖이 부담이 되었지만
2주간 동안 말씀을 묵상하면서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생각들을 모으기 위해 저희가 택한 방법은
본문 말씀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질문과 대답을 함께 올립니다.

1. ‘저희’는 누구인가?
- 예수님을 못박은 자들. 조롱하는 자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도록 요구한 자들.
- 나는 ‘저희’ 속에 포함되는가? 2000년 전, 그곳에 있지 않았다고 해서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2000년 전에 죽은 예수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 나도 ‘저희’ 속에 포함된다. 내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나는 어땠을 것인가? 그들처럼 예수님을 조롱하고, 배신하고, 못박고, 내가 어떤 죄를 짓고 있는 것인지 몰랐을 것이다.
- 내 안에 있는 악함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 오늘 하루 나는 예수님을 다시 못박지 않았던가, 그를 부인하고, 그를 조롱하지 않았던가.

2. ‘자기의 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 무고. 예수를 못박는 일. 조롱. 배신…
- ‘저희들이 하는 일’은 저들만의 일인가?
- 나는 예수님께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는가?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 있는가?

3. 왜 예수님은 ‘그들을(우리를, 나를)’ 용서하는가?
- 예수님은 그들의 죄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변호하신다.
- 내가 예수님 이었다면 상대방이 알고 저지르는 죄든 모르고 저지르는 죄든 내가 받는 고통에 대해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의 무지와 약함을 인정하신다.
-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바로 용서다. 죄를 지은 인류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하나님의 아들을 이땅에 보내게 하신다.

4.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 그의 상처와 고통에 대해 깊이 느껴야 한다.
-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 감사를 흐르게 해야 한다.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광야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해의 요절 말씀  (0) 2006.01.02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  (3) 2005.11.11
주일 묵상 -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 2005.11.06
주일 대표 기도(2005. 10. 29)  (0) 2005.10.29
채희동 목사님  (0) 2004.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