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

수인선철도 - 이창기

by tirol 2019. 2. 22.

수인선철도 

 

이창기 


그렇게 왔다 가나부다 갈대 북서풍과 청둥오리의 2월 

스스로 독을 품게 하던 겨울의, 가난과 갈증의 새벽으로 가는 

밤마다 몸서리치며 떨던 바다를 한 광주리씩 머리에 이고 

고개 숙인 낙타처럼 또박또박 걷게 하는 하나뿐인 길 

떠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빵과 홀로 남은 여자의 헝클어진 머리같은 

그들이 버리고 간 추억이 깨진 소주병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불륜의 끊임없는 바퀴와 익숙한 체중을 못 잊어하는 옥수수밭에서 

숨죽여 지켜보는 아이들의 뜨듯한 가랭이 같은 아직도 귀대면 

중무장한 병사의 씩씩한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이 오래도록 남아서 

태업한 꿈 속까지 이어지는 나는 수척한 햇빛에 이리저리 반사되며 

얻어터지며 철길 위에 팔 벌려 수평을 잡으며 위태롭게 걷는다 

그렇게 왔다 가나부다 70년대 배호 김종삼 그리고 너는 


<이창기,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문학과지성사, 1989>

 

* tirol's thought

 

어느 영화였던가 드라마였던가

극 중 주인공이 이 시를 읊는데 너무 멋있어서 

시집을 찾아서 읽었더랬다. 

(그게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더 이상 다니지 않지만

이 시는 그때나 지금이나 소리내어 읽기에 좋다.

'그렇게 왔다 가나부다...'

'...70년대 배호 김종삼 그리고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