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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사직서 쓰는 아침 - 전윤호

by tirol 2005. 12. 15.
사직서 쓰는 아침

전윤호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자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
산 채 잡혀먹기 싫은 심정에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 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같은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전윤호 시집, 연애소설, 다시, 2005/


* tirol's thought

며칠째 내년도 '목표'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점심을 먹다가 회사 선배들에게
'형님들의 내년도 '목표'는 뭐냐'고 물어보니까
한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것',
또 한 사람도 그 비슷한 것(솔직히 기억이 잘 안난다)이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되돌아 오는 질문,
"그러는 너는?"
나는 '제대로 된 삶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애매하게 답한다.
목표를 생각하다가 새삼스레 깨닫는 것은
샐러리맨의 삶이란게 얼마나 취약한가 하는 점이다.
내 나름의 생의 목표를 세우기엔 제약요건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그 제약요건들을 덜어내고 남는 나는 또 얼마나 앙상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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