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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묶인 개가 짖을 때 - 정일근

by tirol 2005. 12. 14.
묶인 개가 짖을 때

정일근


묶인 개가 짖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 은현리를 지날 때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움찔거리지도, 두려워 물러서지도 마라
묶여서 짖는 개를 바라보아라, 개는
그대 발자국 소리가 반가워 짖는 것이다
목줄에 묶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그 소리 구원의 손길 같아서
깜깜한 우물 끝으로 내려오는 두레박줄 같아서
온몸으로 자신의 신호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묶인 개는 짖는 것이다
젊은 한때 나도 묶여 산 적이 있다
그때 뚜벅뚜벅 찾아오는 구둣발 소리에
내가 질렀던 고함들은 적의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불빛 같은 신호였다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쓸쓸하여 굳어버린 그 눈 바라보아라
묶인 개의 눈알에 비치는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 보아라


/정일근 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문학사상사, 2003/


* tirol's thought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묶여' 살아간다.
행여 묶여진 목줄이 풀어지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묶인 목줄의 댓가로 내 앞에 놓여진 밥그릇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묶인 내가 이렇게 짖는 것도 외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