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인 개가 짖을 때
정일근
묶인 개가 짖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 은현리를 지날 때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움찔거리지도, 두려워 물러서지도 마라
묶여서 짖는 개를 바라보아라, 개는
그대 발자국 소리가 반가워 짖는 것이다
목줄에 묶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그 소리 구원의 손길 같아서
깜깜한 우물 끝으로 내려오는 두레박줄 같아서
온몸으로 자신의 신호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묶인 개는 짖는 것이다
젊은 한때 나도 묶여 산 적이 있다
그때 뚜벅뚜벅 찾아오는 구둣발 소리에
내가 질렀던 고함들은 적의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불빛 같은 신호였다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쓸쓸하여 굳어버린 그 눈 바라보아라
묶인 개의 눈알에 비치는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 보아라
/정일근 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문학사상사, 2003/
정일근
묶인 개가 짖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 은현리를 지날 때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움찔거리지도, 두려워 물러서지도 마라
묶여서 짖는 개를 바라보아라, 개는
그대 발자국 소리가 반가워 짖는 것이다
목줄에 묶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그 소리 구원의 손길 같아서
깜깜한 우물 끝으로 내려오는 두레박줄 같아서
온몸으로 자신의 신호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묶인 개는 짖는 것이다
젊은 한때 나도 묶여 산 적이 있다
그때 뚜벅뚜벅 찾아오는 구둣발 소리에
내가 질렀던 고함들은 적의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불빛 같은 신호였다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쓸쓸하여 굳어버린 그 눈 바라보아라
묶인 개의 눈알에 비치는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 보아라
/정일근 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문학사상사, 2003/
* tirol's thought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묶여' 살아간다.
행여 묶여진 목줄이 풀어지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묶인 목줄의 댓가로 내 앞에 놓여진 밥그릇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묶인 내가 이렇게 짖는 것도 외롭기 때문이다.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묶여' 살아간다.
행여 묶여진 목줄이 풀어지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묶인 목줄의 댓가로 내 앞에 놓여진 밥그릇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묶인 내가 이렇게 짖는 것도 외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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