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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삐걱대는 의자야,너도 - 전동균

by tirol 2005. 11. 30.
삐걱대는 의자야, 너도

전동균


변두리 포장마차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빗방울 소리

마음의 안쪽으로
파고드는
그 소리의 끝을 따라갈 수 없어
우동 먹으러 왔다가 죄 없는 술잔만 비우는데요

마흔 살의 허기,
공복의 찬 속을 확, 확, 불지르는
소주맛 같은
그런 여자 하나 만났으면 싶은데요

세상도 좀 알고
남자도 좀 아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도 뗄 줄 아는
여자의
휘어질 땐 휘어지고 감을 땐 착착 감는
뽕짝노래 속으로 들어가,
슬쩍, 손만 대도 젖어드는 몸 속으로 들어가, 들어가
한 사나흘
젓갈처럼 푹 삭았으면 싶은데요, 그런데요

-니에미, 삐걱대는 의자야, 너도 한잔해라


/전동균 시집,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세계사, 2002/


* tirol's thought

어디다 대고 한바탕 큰소리로 욕이라도 하고 싶었던 하루.
그렇다고 진짜로 그럴 수는 없고,
이런 마음을 기대어 볼 시를 헤아리다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렸다.

'-니에미, 삐걱대는 의자야, 너도 한잔해라'

변두리 포장마차의 삐걱대는 의자를 친구삼아,
푸념이라도 늘어놓으며 한 잔 하고 싶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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