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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울음의 힘 - 김충규

by tirol 2005. 10. 26.
울음의 힘

김충규


새는 뼈가 순하여
날개만 펼쳐도 쏜살같이 날아가지만
때로는 세찬 바람 앞에 저항하기도 한다
날개 관절이 뜨겁게 달구어져
더 날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새는 꺽꺽 울음을 쏟아낸다
혀를 입천장에 바짝 올려붙여
울음의 울림을 제 몸에 심으며
그 울음의 힘으로 십 리를 날아간다

/김충규 시집,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문학동네/


* tirol's thouht

요 며칠 아내가 많이 힘들어한다. 몇주전 걸린 감기 몸살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데다가 학교에, 직장에, 이런 저런 집안 일에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는 것이 그 이유다. 최근에는 특별히 마음이 많이 쓰이는 걱정거리가 생긴 것도 알고 있다. 저녁을 먹으며 그런 자신의 상태에 대해 하소연을 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퉁박을 놓는다. 말은 글과 달라서 여러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이게 되고, 아내가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아내가 그걸 표현하거나 그런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내를 전폭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조건 반사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게된다. 아내는 그런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울지... 안다. 그 원망에 생각이 미쳐 입을 다물어 보지만 이미 늦었다.

내 바램이 너무 이상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울음이 나는 세상의 많은 일들 앞에서 아내가 울음에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울음의 울림을 제 몸에 심으며/그 울음의 힘으로 십 리를 날아'가는 새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기운내시라, 마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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