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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돌의자 - 전동균

by tirol 2005. 11. 4.
돌의자

전동균


광화문 성공회 앞뜰
모과나무 아래 놓여 있는 돌의자

발목 다친 비둘기도 앉았다 간다
술취한 노숙자도 낮잠 자다 간다
신문지 몇 장 남겨두고 간다
이따금 모과나무 가지 사이
며칠 잠 못 잔 하늘이 왔다가 간다
모과나무에 모과가 열리듯
그렇게 살수는 없나, 중얼거리며
傷心한 얼굴로 커피 한 잔 마시고 간다
어린아이도, 마른 꽃잎도, 성가 소리도 앉았다 간다
낙옆 질 땐 속눈썹 긴 바람이
잠깐 앉았다 가고
그 뒤에 키만 훌쩍 큰 저녁이 멈칫멈칫 따라와
대책 없이 줄담배 피우고 간다

누구나 와서 쉬었다 가는 돌의자
날마다 세상을 향해
조금씩 길어지는 돌의자

/전동균 시집,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세계사, 2002/


* tirol's thought

엊저녁 침대에 누워 시집을 읽다가, 한번 소리를 내어 낭독을 해봤다. 옆에 있던 아내가 '무슨 시를 그렇게 감정없이 읽느냐'며 타박을 준다. 그러더니 시집을 빼앗아 자기가 한번 읽어보겠노라고 한다. 감정을 넣어서 읽는 아내의 낭독법도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읽어주는 시는 눈으로 읽는 시와 많이 다르다. 좋으냐 싫으냐로 물어본다면 '좋다' 쪽이다. 내친 김에 아내는 페이지를 휘리릭 넘겨가며 마음에 드는 시를 찾아서 몇개 더 읽는다.
그렇게 읽은 시 중에 아내가 마음에 들어하던 시를 하나 올린다.
매일 눈으로만 시를 읽던 사람은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시라.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한번 읽어봐 달라고 부탁해 보셔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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