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675 참 빨랐지 그 양반 - 이정록 참 빨랐지 그 양반 이정록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 2025. 4. 22. 빈방 - 김사인 빈방김사인나 이제 눕네봄풀들은 꽃도 없이 스러지고우리는 너무 멀리 떠나 왔나봐저물어가는데채독 걸린 무서운 아이들만장다리 밭에 뒹굴고아아 꽃밭은 결딴났으니봄날의 좋은 볕과환호하던 잎들과묵묵히 둘러앉던 저녁 밥상의 순한 이마들은어느 처마 밑에서 울고 있는가나는 눕네 아슬한 가지 끝에늙은 까마귀 같이무서운 날들이오고 있네자, 한 잔눈물겨운 것이 어디 술뿐일까만그래도 한 잔tirol's thought'채독'이 뭔가 싶어 찾아봤다. 채독 菜毒[채ː독]1. 채소 따위에 섞여 있는, 채독증을 일으키는 독기.2. 의학 구충에 감염되었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요즘 아이들도 '채독'에 걸리나 모르겠다. 아마도 예전 같지는 않겠지. 시인은 어떤 심정으로'장다리 밭에 뒹굴며/ 꽃밭을 결딴내는''채독 걸린 무서운 아이들'.. 2025. 4. 17.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 마종기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마종기경상도 하회 마을을 방문하러 강둑을 건너고강진의 초당에서는 고운 물살 안주 삼아 한잔 한다는친구의 편지에 몇 해 동안 입맛만 다시다가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향기 진한 이탈리아 들꽃을 눈에서 지우고해 뜨고 해 지는 광활한 고원의 비밀도 지우고돌침대에서 일어나 길 떠나는 작은 성인의 발.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피붙이 같은 새들과 이승의 인연을 오래 나누고성도 이름도 포기해버린 야산을 다독거린 후신들린 듯 엇싸엇싸 몸의 모든 문을 열어버린다.머리 위로는 여러 개의 하늘이 모여 손을 잡는다.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보이지 않는 나라의 숨,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말,먼 곳 어렵게 헤치고 온 아늑한 시간 속을 가면서... 2024. 12. 17.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 허수경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허수경 저녁에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떨어진 물새 찬 물새훅,밀려오는 바람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꽃다발을 보내기에도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꿈벅거리며바람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들며 중얼거리네 당신,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였어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그 앞에 서서 조용히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던 꽃을 집어드는 양.. 2024. 10. 23.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최승자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매독 같은 가을.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tirol's thought ‘개 같은 가을‘, ‘매독 같은 가을‘은 어떤 가을일까일단 분위기 있고, 여유있는 가을은 아닌게 분명하다.게다가 그냥 오는 것도 아니고 ’쳐들어‘ 온다.싸움을 걸듯, .. 2024. 10. 17. 살고보자 살았나살았다이렇게까지 살아서 뭐하나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나그래도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백배 낫지러프든 벙커든 오비 말뚝 옆 경사든살았으면 다음 샷잘 치면 되지살았다고 다음 샷잘 치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쳐보는 게남는 장사 아닌가탑볼이든 뒤땅이든앞으로 보내는 게 어딘가이 정도면 낫 배드화낸다고 정타없고분낸다고 장타없다쓰리온에 투퍼팅컨시드 더블로 막았으니이만하면 훌륭하지살았나살고보자살다보면 어떻게든살아서 운좋으면파도 보고 버디도 보겠지일단 살고 보자 2024. 10. 10. 이전 1 2 3 4 ··· 1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