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672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 허수경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허수경 저녁에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떨어진 물새 찬 물새훅,밀려오는 바람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꽃다발을 보내기에도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꿈벅거리며바람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들며 중얼거리네 당신,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였어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그 앞에 서서 조용히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던 꽃을 집어드는 양.. 2024. 10. 23.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최승자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매독 같은 가을.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tirol's thought ‘개 같은 가을‘, ‘매독 같은 가을‘은 어떤 가을일까일단 분위기 있고, 여유있는 가을은 아닌게 분명하다.게다가 그냥 오는 것도 아니고 ’쳐들어‘ 온다.싸움을 걸듯, .. 2024. 10. 17. 살고보자 살았나 살았다 이렇게까지 살아서 뭐하나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나 그래도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백배 낫지 러프든 벙커든 오비 말뚝 옆 경사든 살았으면 다음 샷 잘 치면 되지 살았다고 다음 샷 잘 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쳐보는 게 남는 장사 아닌가 탑볼이든 뒤땅이든 앞으로 보내는 게 어딘가 이 정도면 낫 배드 화낸다고 정타없고 분낸다고 장타없다 쓰리온에 투퍼팅 컨시드 더블로 막았으니 이만하면 훌륭하지 살았나 살고보자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아서 운좋으면 파도 보고 버디도 보겠지 일단 살고 보자 2024. 10. 10. 클럽하우스에서 새벽 여섯시 십오분모자를 고쳐쓰고허리띠를 조이고신발끈을 묶는다비장한 표정으로거울 앞에 일렬로 서서보호크림을 바르는 사람들빼놓은 건 없나화장실은 다녀왔나서로의 컨디션을 물어보머결의를 다진다맨 정신으로는 힘들었는지옆자리에선 얼핏 술 냄새도 난다골프를 모르는 외계인들이 보면지구를 구하러 나서는최후의 용사들인 줄 알겠다18번의 전투를 마치고무사히 귀환할 수 있길싸움에 지더라도 나라 잃은 백성처럼슬퍼하거나 폭음하지 않길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짝대기로 하는 공놀이라는 걸잊지않길 다짐하는클럽하우스에서의 기도 2024. 10. 10. '남자를 위하여' (김형경) 중에서 한 남자가 아버지를 잃은 친구를 위로하는 광경을 목격한 일이 있다. 그 남자는 친구를 찾아가서 침묵 속에 잠시 앉아 있다가, "술이나 하자"면서 그를 술집으로 데려가서는, "한잔해라"면서 술잔 가득 술을 부어주었다. 그러고는 정치와 스포츠 이야기로 술자리를 채워나갔다. 장례는 잘 치렀는지, 마음은 어떤지 따위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남자들은 그것으로 모든 대화를 했다고 생각한다. 술을 따라주 는 것이 안부를 묻는 일이고, 술잔을 서로 부딪치면서 상대를 위로 하고, 각자 자기 잔의 술을 마시면서 슬픔을 느낀다. 술자리에 마주 앉기, 함께 술 마시기, 함께 취하기,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남자는 위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는 말을 할 줄 모르고, 상대방을 감싸안아 편안하게 해주는 행동을 할 줄.. 2024. 8. 23. 늙은 군인의 노래 - 김민기 https://youtu.be/367BPxlbRaA?si=YOLfJFBEy3juYBlT 김민기 선생이 소천하셨다. 향년 73세. 내가 '늙은 군인의 노래'를 처음 듣고 배운 건 중학교 때였던가? 노래를 처음 배울 때는 금지곡이었고 고등학교 때인가 해금이 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점심 시간에 방송반에서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하루는 옆자리에 앉은 방송반 친구한테 부탁을 해서 방송실에 테입을 몇개 들고 가서 이 노래를 틀었던 기억이 난다. 방송실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는데, 뭔가 해방감 비슷한 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 페이스북에는 온통 김민기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 넘쳐난다. 사람들마다 고른 노래도 제각각이다. 나도 한 곡을 고른다면 뭘 고를까 혼자 질문.. 2024. 7. 22. 이전 1 2 3 4 ··· 1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