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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보자 살았나 살았다 이렇게까지 살아서 뭐하나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나 그래도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백배 낫지 러프든 벙커든 오비 말뚝 옆 경사든 살았으면 다음 샷 잘 치면 되지 살았다고 다음 샷 잘 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쳐보는 게 남는 장사 아닌가 탑볼이든 뒤땅이든 앞으로 보내는 게 어딘가 이 정도면 낫 배드 화낸다고 정타없고 분낸다고 장타없다 쓰리온에 투퍼팅 컨시드 더블로 막았으니 이만하면 훌륭하지 살았나 살고보자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아서 운좋으면 파도 보고 버디도 보겠지 일단 살고 보자 2024. 10. 10.
클럽하우스에서 새벽 여섯시 십오분모자를 고쳐쓰고허리띠를 조이고신발끈을 묶는다비장한 표정으로거울 앞에 일렬로 서서보호크림을 바르는 사람들빼놓은 건 없나화장실은 다녀왔나서로의 컨디션을 물어보머결의를 다진다맨 정신으로는 힘들었는지옆자리에선 얼핏 술 냄새도 난다골프를 모르는 외계인들이 보면지구를 구하러 나서는최후의 용사들인 줄 알겠다18번의 전투를 마치고무사히 귀환할 수 있길싸움에 지더라도 나라 잃은 백성처럼슬퍼하거나 폭음하지 않길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짝대기로 하는 공놀이라는 걸잊지않길 다짐하는클럽하우스에서의 기도 2024. 10. 10.
'남자를 위하여' (김형경) 중에서 한 남자가 아버지를 잃은 친구를 위로하는 광경을 목격한 일이 있다. 그 남자는 친구를 찾아가서 침묵 속에 잠시 앉아 있다가, "술이나 하자"면서 그를 술집으로 데려가서는, "한잔해라"면서 술잔 가득 술을 부어주었다. 그러고는 정치와 스포츠 이야기로 술자리를 채워나갔다. 장례는 잘 치렀는지, 마음은 어떤지 따위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남자들은 그것으로 모든 대화를 했다고 생각한다. 술을 따라주 는 것이 안부를 묻는 일이고, 술잔을 서로 부딪치면서 상대를 위로 하고, 각자 자기 잔의 술을 마시면서 슬픔을 느낀다. 술자리에 마주 앉기, 함께 술 마시기, 함께 취하기,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남자는 위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는 말을 할 줄 모르고, 상대방을 감싸안아 편안하게 해주는 행동을 할 줄.. 2024. 8. 23.
늙은 군인의 노래 - 김민기 https://youtu.be/367BPxlbRaA?si=YOLfJFBEy3juYBlT 김민기 선생이 소천하셨다. 향년 73세. 내가 '늙은 군인의 노래'를 처음 듣고 배운 건 중학교 때였던가? 노래를 처음 배울 때는 금지곡이었고 고등학교 때인가 해금이 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점심 시간에 방송반에서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하루는 옆자리에 앉은 방송반 친구한테 부탁을 해서 방송실에 테입을 몇개 들고 가서 이 노래를 틀었던 기억이 난다. 방송실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는데, 뭔가 해방감 비슷한 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 페이스북에는 온통 김민기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 넘쳐난다. 사람들마다 고른 노래도 제각각이다. 나도 한 곡을 고른다면 뭘 고를까 혼자 질문.. 2024. 7. 22.
생활과 예보 - 박준 생활과 예보 박준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 tirol's thought 시 속의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는 흰색 란닝구를 입고 계실 것 같다.아버지는 왜 진종일 아무 것도 안하고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을까.어디가 아픈가? 마음이 아픈가?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가? 아무 것도 할 게 없는가?아니면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오늘만 모처럼 쉬고 있는 건가? '비 온다니 꽃지겠다'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은 왜 이 말이었을까.말이 하기 싫었던 건가? 말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건가? 비가 온다니 걱정이 된다는 건가? 좋으면서도 싫다는 건가? 일기예보를 듣다가 뜬금없이 어떤 일이 생각나신 건가? 말과 .. 2024. 7. 21.
(한참 늦은) '아버지의 광시곡' 북토크 참석 후기 (한참 늦은) '아버지의 광시곡'북토크 참석 후기지난 6월 4일에 조성기 작가의 ‘아버지의 광시곡’ 북토크에 다녀왔다. (교회에서는 전도사님으로 불리시지만, 이번은 작가로서의 자리였고 산울교우가 아닌 참석자들도 계셔서 작가님으로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혼자 진행하셔야 한다는 걱정과 달리, 지난번 북콘서트보다 더 재미있었다. 책에 넣지 못한 아버지에 관한 기억으로 시작해, 질의응답, 참석자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발표, 작가의 모노드라마까지 한 시간 반이 금세 지나갔다.질문 시간에 나는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쓰실 수 있는지, 작가로서 ‘자기검열’을 극복하는 비결 같은 게 있으신지,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질문했다. 작가는 소설 속에 실명이 거론된 사람들로 인해 곤란했던 사연과.. 2024.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