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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농업박물관 소식 - 이문재

by tirol 2005. 12. 13.
농업박물관 소식
- 우리 밀 어린싹

이문재


만일 지금 예수가 오신다면
십자가가 아니라 똥짐을 지실 것이라는
권정생 선생의 글을 읽었다

점심 먹으러 갈 때마다 지나다니는 농업박물관
앞뜰에는 원두막에 물레방아까지 돌아간다
원두막 아래 채 다섯 평도 안 되는 밭에
무언가 심어져 있어서 파랬다
우리 밀, 원산지 : 소아시아 이란 파키스탄이라고 쓴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농업박물관 앞뜰
나는 쪼그리고 앉아 우리 밀 어린싹을
하염없이 바라다보았다
농업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밀
우리 밀, 내가 지나온 시절
똥짐 지던 그 시절이
미래가 되고 말았다
우리 밀, 아 오래된 미래

나는 울었다


/이문재 시집,『마음의 오지』, 문학동네, 1999./


* tirol's thought

시인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떠올리며
이 시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점심 먹으러 갈 때마다 지나다니는 농업박물관' 앞뜰에서
'우리 밀 어린싹을/하염없이 바라다' 보다가 '오래된 미래'를 떠올리는 일.
눈물나는 일일 수 있겠다.

ps. '오래된 미래'를 안 읽어본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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