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

도토리 두 알 - 박노해

by tirol 2017. 3. 2.

도토리 두 알


박노해


 

산길에서 주워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더 크고 더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 헨리 데이빗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에게서 따옴.

 


*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 2010)


* source: http://onmaroo.tistory.com/116 



* tirol's thoguht


멀리 빈숲으로 던져진,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가

꼭 참나무가 되길 빈다. 


빌지만,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참나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 것과

참나무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아는 것과 되는 것과의 거리는 

얼마나 멀고도 먼가. 

 '필사적 경쟁'의 논리에 지쳐

내가 너무 삐딱하게 생각하는걸까?


'시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마 - 허은실  (2) 2017.03.16
나는 이제 이별을 알아서 - 문태준  (0) 2017.03.06
부부 - 함민복  (0) 2017.02.28
봄밤 - 김수영  (0) 2017.02.23
국수 - 권혁웅  (0) 201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