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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나는 이제 이별을 알아서 - 문태준

by tirol 2017. 3. 6.

나는 이제 이별을 알아서


문태준



그때는 가지꽃 꽃그늘이 하나 엷게 생겨난 줄로만 알았지요

그때 나는 보라색 가지꽃을 보고 있었지요

당신은 내게 무슨 말을 했으나

새의 울음이 나뭇가지 위에서 사금파리 조각처럼 반짝이는 것만을 보았지요

당신은 내 등뒤를 지나서 갔으나

당신의 발자국이 바닥을 지그시 누르는 것만을 느꼈었지요

그때 나는 참깨꽃 져내린 하얀 자리를 굽어보고 있었지요

이제 겨우 이별을 알아서

그때 내 앉았던 그곳이 당신과의 갈림길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 문태준 시집, '먼 곳', 창비, 2012


* tirol's thought


인간의 뇌는 육체적인 고통과 심리적인 고통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실연으로 마음이 무너져 아플 때 타이레놀을 한 알 먹으면 도움이 된단다.

늘 배가 고팠던 그때, 

그 허기는 외로움이었을까.

근원을 알 수 없는 쓸쓸한 그 기분은 

당신과의 갈림길에 대한 예감이었을까.

시인은 이제 겨우 이별을 알겠다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네.

나는 모르겠네.

아직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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