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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봄밤 - 김수영

by tirol 2017. 2. 23.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합동시집 <평화에의 증언>(1957)



* tirol's thought


'2017년 봄 프로젝트'의 하나로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외워보기로 했다.

그 첫번째로 고른 시가 바로 이 시.

그런데, 

잘 안 외워진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강물에 비친,

아니 

'강물 위에 떨어진'

안 외워진다. 


'혁혁한 업적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번째 행부터 헷갈리기 시작하는

이 빌어먹을 기억력에 대해

나는 조금 당황스럽다.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이여

서둘지 말라, 

업적을 바라지 말라

당황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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