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2017
* source: https://goo.gl/wI0cNj
* tirol's thought
지금껏 내 이마에 손을 짚어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머니, 그리고...
시를 읽고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조금 선량해'졌던 것 같기도 하고
마음과 몸이 따뜻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린 마음이 들었던 같기도 하고,
그렇다.
시 속의 화자는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벙어리처럼 울었다'고 하는데
내 기억 속의 어린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울다가 지쳐,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큰 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면 어느샌가 어머니가 와서
슬쩍 이마에 손을 얹어주셨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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