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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이마 - 허은실

by tirol 2017. 3. 16.

이마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2017


* source: https://goo.gl/wI0cNj



* tirol's thought


지금껏 내 이마에 손을 짚어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머니, 그리고...

시를 읽고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조금 선량해'졌던 것 같기도 하고

마음과 몸이 따뜻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린 마음이 들었던 같기도 하고, 

그렇다. 


시 속의 화자는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벙어리처럼 울었다'고 하는데

내 기억 속의 어린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울다가 지쳐,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큰 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면 어느샌가 어머니가 와서 

슬쩍 이마에 손을 얹어주셨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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