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Robert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Robert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tirol's thouht
얼마 전 경복궁 근처에 있는 대림미술관에 다녀왔다.
'LIVING ROOM'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미술 애호가(라기 보단 컬렉터라는 편이 맞겠다)들의 거실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놓는다'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인 전시였다.
미술관이 공적으로 기획된 전시공간이라면 한 개인 컬렉터의 Living Room은 사적으로 기획된 전시공간일 것이다. 물론 그 규모라던가 의도에 차이는 있겠으나 '기획된 전시공간'을 다시 '전시'한다는 면에서 이 전시는 '메타(meta)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의 Living Room을 공개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지영씨, 갤러리스트 홍송원씨, 사업가 김창일씨, 패션디자이너 서정기씨 그리고 익명의 개인 컬렉터 L씨, 개인 컬렉터 C씨 등이다.
그들의 Living Room을 둘러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1) 사람들의 취향이란 정말 다양하다.
2) 작품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과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누군가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꼭 배타적으로 소유해야 하나? 하긴 정말 좋아하면 갖고 싶을 수도 있겠다. 미술가들도 작품이 팔려야 먹고 살 수 있을테고. 하지만 얼마만큼 어디까지 가져야할까,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교보문고에 있는 책이 전부 내게 주어진다면-단 다시 팔 수는 없다는 조건으로- 그것도 엄청난 재앙이지 않을까? 내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좋아해서 몇 점을 구입해 거실에 걸어놓을 수는 있겠지만(사실은 못산다. 돈이 없어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 전부가 내게 주어진다면(또는 전부를 살 수 있다면) 또 그걸 어찌할 것인가? 거실은 너무 적고 지하실에 갖다 쌓아둘 수도 없고...결국 좋아하는 것을 소유하기 위해선 그 소유를 감당할만한 금전적, 공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어떤 인간에게나 그 여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어디쯤에선가 포기와 선택을 해야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3) 거실은 전시공간인가 생활공간인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공간인가 개인적인 휴식의 공간인가? 저런 곳에서 편하게 누워서 책보고 뒹굴거리며 쉴 수 있을까? 하긴 앙드레 지드가 본인의 일기가 언젠가 공개될꺼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기를 썼다고 하듯이 본인의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공개될 것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겠다...
뭐,이런 생각들...
이런 생각들 중에 Rober Frost의 이 시가 생각나서 오랫만에 찾아서 번역을 해 봤다.
얼마 전 경복궁 근처에 있는 대림미술관에 다녀왔다.
'LIVING ROOM'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미술 애호가(라기 보단 컬렉터라는 편이 맞겠다)들의 거실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놓는다'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인 전시였다.
미술관이 공적으로 기획된 전시공간이라면 한 개인 컬렉터의 Living Room은 사적으로 기획된 전시공간일 것이다. 물론 그 규모라던가 의도에 차이는 있겠으나 '기획된 전시공간'을 다시 '전시'한다는 면에서 이 전시는 '메타(meta)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의 Living Room을 공개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지영씨, 갤러리스트 홍송원씨, 사업가 김창일씨, 패션디자이너 서정기씨 그리고 익명의 개인 컬렉터 L씨, 개인 컬렉터 C씨 등이다.
그들의 Living Room을 둘러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1) 사람들의 취향이란 정말 다양하다.
2) 작품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과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누군가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꼭 배타적으로 소유해야 하나? 하긴 정말 좋아하면 갖고 싶을 수도 있겠다. 미술가들도 작품이 팔려야 먹고 살 수 있을테고. 하지만 얼마만큼 어디까지 가져야할까,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교보문고에 있는 책이 전부 내게 주어진다면-단 다시 팔 수는 없다는 조건으로- 그것도 엄청난 재앙이지 않을까? 내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좋아해서 몇 점을 구입해 거실에 걸어놓을 수는 있겠지만(사실은 못산다. 돈이 없어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 전부가 내게 주어진다면(또는 전부를 살 수 있다면) 또 그걸 어찌할 것인가? 거실은 너무 적고 지하실에 갖다 쌓아둘 수도 없고...결국 좋아하는 것을 소유하기 위해선 그 소유를 감당할만한 금전적, 공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어떤 인간에게나 그 여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어디쯤에선가 포기와 선택을 해야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3) 거실은 전시공간인가 생활공간인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공간인가 개인적인 휴식의 공간인가? 저런 곳에서 편하게 누워서 책보고 뒹굴거리며 쉴 수 있을까? 하긴 앙드레 지드가 본인의 일기가 언젠가 공개될꺼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기를 썼다고 하듯이 본인의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공개될 것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겠다...
뭐,이런 생각들...
이런 생각들 중에 Rober Frost의 이 시가 생각나서 오랫만에 찾아서 번역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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