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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기러기 - 이면우

by tirol 2006. 7. 11.
기러기

이면우


저 새들은 어디서 오느냐고 아이가 물었다
세상 저 끝에서 온다고 말해주었다.

저렇게 떼지어 가는 거냐고 아이가 또 물었다
세상 저 끝으로 가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럼 어디가 세상 끝이냐고, 이번엔 정색하며 올려다 본다
잠깐 궁리 끝, 기러기 내려앉는 곳이겠지, 하고 둘러댔다.

호숫가 외딴 오두막 가까이 키보다 높은 갈대들
손 저어 쉬어 가라고 기러기 부르는 곳
저녁 막 먹고 나란히 서서 고개 젖혀 하늘 보며
밭고랑에 오줌발 쏘던 깊은 겨울.

/이면우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시선 211), 창비, 2001년 10월 /


* tirol's thought

내겐 아직 '저 새들은 어디서 오느냐'고 질문을 던질 아이가 없다.
아이가 없는 나는,
'저 새들은 어디서 오느냐, 저렇게 떼지어 가는 거냐, 그럼 어디가 세상 끝이냐'
스스로 궁금해하고
아버지가 없는 나는,
'저 세상 끝에서 온다고, 저 세상 끝으로 가는 거라고, 기러기 내려앉는 곳'이라고
스스로에게 답해주곤 한다.
아이도 아버지도 없는 나는,
'고개 젖혀 하늘 보며'
혼자 가끔 중얼거려 보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