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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김기택

by tirol 2006. 6. 21.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김기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를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 tirol's thought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뜨거운 무더위가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그 무더위도 언제가는 지나갈테고
풀벌레 소리 방 안 가득 들어오는 가을도 오리라.
시를 읽으며 풀벌레 소리를 들어본 날을 떠올려 보았다.
쉽사리 기억나지 않는다.
내 귀도 어느새 '발뒤꿈치처럼 두꺼'워 졌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