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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2월은 홀로 걷는 달 - 천양희

by tirol 2018. 2. 7.

2월은 홀로 걷는 달


천양희



헤맨다고 다 방황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며 

미아리를 미아처럼 걸었다 

기척도 없이 오는 눈발을 

빛인 듯 받으며 소리없이 걸었다 

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어 말없이 걸었다 

길이 너무 미끄러워 

그래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중얼거리며 걸었다 

열리면 닫기 어려운 것이 

고생문(苦生門)이란 걸 모르고 산 어미같이 걸었다 

사람이 괴로운 건 관계 때문이란 말 생각나 

지나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걸었다 

불가능한 것 기대한 게 잘못이었나 후회하다 

서쪽을 오래 바라보며 걸었다 

오늘 내 발자국은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된다는 말 곱씹으며 걸었다


나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니라 길인가? 

길에게 물으며 홀로 걸었다



* 천양희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 


tirol's thought


왜 일년 열두달 중에 2월일까?

왜 '홀로 걷는 달'일까?


물고기가 뛰노는 달

너구리 달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새순이 돋는 달


혹시나 싶어 인디언들의 달 이름을 찾아보니

'홀로 걷는 달'은 

체로키 족이 2월을 부르는 이름이다.

'홀로 걷는 달'. 

그럼 체로키 족은 왜?


새롭게 시작한 날들

함께 걷는 길에서

걷다보니 어느덧 

홀로 걷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뜻일까? 


홀로 걷다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또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걷게 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홀로든 함께든

그렇게 걷고 걷는 우리네 인생길, 

'나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니라 길인가'라는 질문을

중얼거리듯 던져보는 달이라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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