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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不醉不歸 - 허수경

by tirol 2018. 3. 19.
不醉不歸

허수경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던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 tirol's thought

술 마시는 데 철이 따로 있겠는가만은
'봄그늘 술자리'는 왠지 더 아득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어디 제 마음대로 되는가
붙잡으려 한다고 붙잡아지는가
보내려 한다고 보내지는가 
붙잡지 못한 마음에 대한 아쉬움은 
'기억은 없다'에서 '기억만 없다'로 움직인다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
취할 수 없어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취하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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