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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세한 - 장석남

by tirol 2018. 2. 1.

세한


장석남



소나무들이 늘어서서 외롭다

소나무는 연대하지 않는다

독자 노선의 소나무마다는

바람의 사업장이다

대장간이 되어 연장을 벼리다가

사나운 준마들을 키운다

나의 뺨은 얼어간다

늑골 아래 연인은 기침을 한다 바람은

재빨리 기침을 모아 갈밭 속에 뿌리고

지난 모든 계절의 왕국들이

찢겨 펄럭인다

이 비탄의 풍경 속에서

나는 천천히 걸어나왔고

그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술잔을 나누던 이 여럿 바뀌지 않았는가

술에 밤하늘의 빛들이 녹는다

술잔을 나누던 이들 늘어서서 외롭다


* 장석남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tirol's thought


'소나무마다는 바람의 사업장'

나의 사업장은 어디인가

'밤하늘의 빛들이 녹은' 술은 어떤 맛일까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한

반짝이지만 쉽게 여운이 가시지 않는

그런 맛일까

'술잔을 나누던 이들'은 왜 

늘어서서 외로워하는가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어서인가

'밤하늘의 빛들이 녹은' 술 맛이

까무라칠만큼 끝내주기 때문인가  


사업장의 밤은 깊어가고

'밤하늘의 빛들이 녹은' 술이 아니라도 좋으니

술 한잔 마시고 까무라치듯 한숨 

시원하게 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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