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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황무지 - T.S 엘리엇

by tirol 2007. 4. 9.

황무지(荒蕪地)

T.S 엘리엇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I.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 source: http://blog.naver.com/deeptoy44/30016098275


* tirol's thought

대학 때 이 시를 읽은 기억으론
'조금 길다' 싶었는데,
다시 보니 정말 길다.
그 시절 내게 '사월이 잔인'했던 이유는
중간 고사가 있었고,
벚꽃은 흩날리는 데 애인이 없었고,
혹은 애인이 갑자기 전화를 안받고...
뭐 이런 것들이었다.
그후 열여덟해가 흐른 이 봄에
나는 얼마나 행복해졌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이 시를 한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는 사람들
(이 시가 얼마나 긴 시인지, 어떤 맥락에서 그 구절이 씌어진 건지 모르는 사람들)
에 의해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이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뭐, 생각해 보면 그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싶기도 하고, 나쁜 것 같기도 하고...)

* 이 시의 의미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길.
  http://blog.naver.com/grasses21?Redirect=Log&logNo=10014758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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