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김사인
한번은 터지는 것
터져 넝마 조각이 되는 것
우연한 손톱
우연한 처마 끝
우연한 나뭇가지
조금 이르거나 늦을 뿐
모퉁이는 어디에나 있으므로.
많이 불릴수록 몸은 침에 삭지 무거워지지.
조금 질긴 것도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네.
모퉁이를 피해도 소용없네.
이번엔 조금씩 바람이 새나가지.
어린 풍선들은 모른다
한번 불리기 시작하면 그만둘 수 없다는 걸.
뽐내고 싶어지지
더 더 더 더 커지고 싶지.
아차,
한순간 사라지네 허깨비처럼
누더기 살점만 길바닥에 흩어진다네.
어쩔 수 없네 아아,
불리지 않으면 풍선이 아닌 걸.
<김사인,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
tirol's thought
시를 읽고 나니,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그러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시가 의미하는 바가 너무 명료해서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어린 풍선들은 모른다'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맞아' 싶다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꼰대?'라는 쪽으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뽐내고 싶어 지는 것이 어디 어린 풍선들 만의 일인가, 한번 불리기 시작하면 그만둘 수 없다는 걸 그들이라고 모르겠는가.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달, 올해도 다행히 모퉁이를 피해 여기까지 왔지만 조금씩 바람이 새어나간 몸은 일 년 치만큼 낡고 삭았다.
큰 의미는 없다지만 조금 질긴 것들이 부러워질 때도 있다.
어쩔 수 없네 한 번은 터지는 것 한순간 사라지는 것 허깨비처럼
풍선은 어디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네 불리기 싫다고 불려지지 않는 것도 아니라네
어쩔 수 없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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